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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자작글

계묘년(癸卯年)의 끝자락에서


삶의 길 / 청송 권규학

뭘까, 삶이란 게
나의 삶이라고 해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등을 맞대고 어깨를 맞딱 뜨리며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사는 것이다
가슴과 가슴으로 소통하는 그런

가끔은 외나무다리를 걷다가도
숲이 있는 산책길을 걸을 수도
가시밭길이나 늪지를 걷다가도
훤히 뚫린 신작로를 걸을 수도
앞이 보이는 탄탄대로를 걷다가도 
예측하지 못할 미로를 걸을 수도 있는

신(神)의 이름을 빌어 끊은
운명이란 이름의 열차표
어쩌면, 신이 정해 놓은 길을 따라
운명이란 이름의 바다를 표류하는
한 척의 돛배인지도 모를.(231216)


 

 

계묘년(癸卯年)의 끝자락에서 / 청송 권규학

 

 

계묘년( 癸卯年)의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달랑달랑, 한 장 남은 달력을 바라보노라니

유수(流水) 같은 세월 속 삶이 무상(無常)합니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빛깔이 온산 들녘을 물들이더니만

어느 순간 한 점 두 점 잿빛 물감이 세상을 점령합니다.

뜨락의 감나무 잎에 찍힌 흔적이 담장 위의 담쟁이넝쿨을 타고

남산골 산벚나무 이파리로 번져 산과 들에 앞다투어 겨울을 전합니다.

 

문득 남송(南宋)의 학자인 주희(朱熹: 1130-1200)

'주문공권학문(朱文公勸學文)'의 시구가 떠오릅니다.

 

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물위금일불학이유내일)

오늘 배우지 않고 내일 있다 말하지 말고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물위금년불학이유내년)

금년에 배우지 않고 내년 있다 말하지 마라

日月逝矣歲不我延(일월서의세불아연)

날과 달은 가도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으니

嗚呼老矣是誰之愆(오호노의시수지건)

아! 늙어가는 것이 누구의 허물인가

 

소년이노학난성  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나니

일촌광음불가경 一寸光陰不可輕

짧은 시간일지라도 가벼이 하지 마라

미각지당춘초몽 未覺池塘春草夢

연못가 봄풀은 꿈에서 채 깨어나지도 않았는데

계전오엽이추성 階前梧葉已秋聲

계단 앞 오동잎은 어느덧 가을을 알리는구나

 

정말이지 빠르고도 빠른 게 세월입니다.

눈을 감으면 하루가 가고, 눈을 뜨면 금세 일주일이,

돌아보면 어느새 한 달에 일 년입니다.

바쁘게 흐르는 세월, 그 세월의 늪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리지 말고

뚜렷한 주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할 시점입니다.

산다는 게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누군가는 쉽다고들 하는데 내가 사는 삶은 그러지 못한 듯합니다.

내가 사는 삶은 울퉁불퉁 굴곡진 길이요, 따끔따끔한 가시밭길인데

남들은 그저 폭신폭신하고 평탄한 탄탄대로인 듯만 합니다.

누구의 삶인들 쉬울 수는 없겠지만, 그저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갈 일입니다.

 

뭘까, 삶이란 게

나의 삶이라고 해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등을 맞대고 어깨를 맞딱 뜨리며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사는 것이다

가슴과 가슴으로 소통하는 그런

 

가끔은 외나무다리를 걷다가도

숲이 있는 산책길을 걸을 수도

가시밭길이나 늪지를 걷다가도

훤히 뚫린 신작로를 걸을 수도

앞이 보이는 탄탄대로를 걷다가도

예측하지 못할 미로를 걸을 수도 있는

 

신(神)의 이름을 빌어 끊은

운명이란 이름의 열차표

어쩌면, 신이 정해 놓은 길을 따라

운명이란 이름의 바다를 표류하는

한 척의 돛배인지도 모를.(231216)

 

-청송 권규학의 詩, '삶의 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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