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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자작글

겨울비

 

 

겨울비 / 청송 권규학

 

 

겨울비, 새벽을 밟고 와

전원(田園)의 추녀 끝

물받이 속으로 숨어 흐를 때

 

사브작사브작

달그락달그락

풋잠*을 보채는 조심스러운 기척

 

비를 피함일까 먹이를 찾음일까

신경을 건드리는 침입자 무리들

애써 청한 내 노루잠*을 깨운다

 

그루잠*을 포기하고

부스스 휑한 눈…,  발코니의 문을 열자

후다닥 달아나는 한 무리 그림자들

 

왠지 미안한 마음이다

내 작은 불편을 이유로

고양이들의 하룻밤 평안을 빼앗은 듯

 

그저 모른 척 선잠*이라도 잘 걸

그랬다면…, 혼자 지새운 겨울밤이

이리도 고적하지는 않았을 텐데

 

헛잠*이든 등걸잠*이든 멍석잠*이든

차라리 그랬으면…, 비 내린 겨울밤이

이토록 울적하진 않았을 것을

 

행여 조작대는 겨울비의 귓속말에

꿈길 찾은 임의 발자국 외면한 채

고운 꽃잠*을 포기하진 않았을 텐데.(240201)

 

* 풋잠 : 든 지 얼마 안 된 옅은 잠

* 노루잠 : 깊이 들지 못하고 자꾸 놀라 깨는 잠

* 그루잠 : 깨었다가 다시 든 잠

* 선잠 : 깊이 들지 못하거나 흡족하게 이루지 못한 잠

* 헛잠 : 거짓으로 자는 척하는 잠

* 등걸잠 : 옷을 입은 채  덮개도 덮지 않고 불편하게 자는 잠

* 멍석잠 : 너무 피곤해서 아무 데서나 쓰러져 자는 잠

* 꽃잠 : 신랑신부가 처음 함께 자는 잠. '첫날밤'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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