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내리는 날에 / 청송 권규학
비가 내렸는데, 봄비가 내렸는데
마음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였습니다
계절이 던져주는 알지 못한 감정을
내 마음이 먼저 읽어낸 듯해서
조금은 겸연쩍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계절은 봄인데
대지를 적시는 건 겨울비만 같습니다
계절은 계절다웠으면 합니다
창밖엔 비가 아닌,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마음 안엔 빗물이 흥건했으면 좋겠습니다
'서운하다'는, '섭섭하다'는
봄비를 향한 이 시답잖은 감정은 뭘까요
비(雨)에 대한 눈(雪)의 태도는 아닙니다
기대 이상 쏟아부은 옹골진 감정
눈(雪)에 대한 비(雨)의 눈 흘김일 뿐입니다
어쩌면, 소용없는 걱정인지도 모릅니다
봄비든, 겨울비든
비가 아닌, 눈이어도 상관없습니다
비를 기다리는 그대 가슴엔
한 방울의 빗물로 적셔주고
눈을 기다리는 그대 마음엔
한 다발의 눈꽃을 뿌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대에게 가는 길엔
비가 아닌, 눈이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눈(雪)은
나이 먹은 사람을 한 순간
어린아이로 만드는 신기한 재주가 있다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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