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같은 인생

 

 

소풍 같은 인생 / 청송 권규학

 

가끔은 밑도 끝도 없는 허황된 생각에 빠져들고,

현실 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공상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고 미래와 우주 속을 떠도는 꿈,

만화 속, 소설 속, 공상과학영화 속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곳,

그런 미지의 세계를 떠돌다가 몽롱한 상태로 현실에 눈을 뜨는….

그런 나를 보고 누군가는 '미친놈(?)'이라고 한다

다른 누군가는 '정신 빠진 놈'이라고, '생각 없는 놈'이라고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놈'이라고 회초리 없는 회초리로 뭇매를 친다

 

지구가 몸살을 앓고 세상살이가 고통받는 요즘엔 덩달아 마음앓이도 심해진다.

인생 모두를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세상 꼬락서니를 어느 정도는 섭렵(?)할 나이…,

고희(古稀)를 코앞에 둔…, 이 나이에 이 무슨 돼먹지 못한 공염불일까.

쓸데없는 계절성 마음앓이에 더해 부질없는 사랑앓이까지…,

어쩌면, '미친놈'이란 말이, '정신 빠진 놈'이란 말이, '생각 없는 놈'이란 말이,

'이해하지 못할 놈'이란 말이 전부 다 맞을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내가 세상을 왜 사는 걸까'에 대해 심취하고,

'내가 죽으면 무엇이 될까'에 관심이 가고, 사후 세계는, 천당은, 지옥은…,

이 지구를 떠난 '우주에는 무엇이 있을까'에 대해 관심이 깊어진다.

뭘까? 인생의 황혼에서 동녘에 떠오르는 일출을 꿈꾸는 게 가당키나 할까.

어차피 한 번 왔다가 한 번 가는 게 인생이라지만, 한 방으로 살기보다는

한 번뿐인 인생을 소중하게 살겠다는 뜻이기에 박수를 칠만도 하다.

 

인생살이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하듯이 좋은 일에는 늘 마(魔)가 끼는 법일까.

한 가지의 좋은 일 다음에는 좋지 않은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밀려오는 느낌이다.

평생을 모은 자금이 어느 순간 반쪽으로 돌아오고, 삶의 연줄을 이어온 관계의 단절과

인연(因緣)에 대한 무개념/무의미함들이 스스로의 삶을 회의 속으로 끌고 간다.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기고, 나쁜 생각을 하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좋은 생각만 하고 싶어서 '좋은 생각'이란 잡지를 구독한 지 몇 년…,

삶이란 게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따라주지는 않는 듯하다.

'좋은 생각'을 읽는다고 해서 좋은 생각을 한다는 단순한 발상…,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을 할 만도 하다.

 

나는 낙관론자인가, 아니면 비관론자인가.

나이 들어가면서 조금씩 삶을 비관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걸 보면

'비관론자' 쪽에 가까워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성선설(性善說) & 성악설(性惡說)'을 따져 들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두고 언성을 높일 나이는 지났건만

왜 다시 그 시절을 불러와서 스스로 괴로워하는 걸까.

차라리 조금 일찍 세상을 하직하고 영면하는 게 좋지 않을까.

문득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될 듯도 하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데

어찌 하나뿐인 소중한 생명을 하잘것없이 버릴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아니, 삶의 미련이 남아서는 아니지만

스스로 생명을 끊는다는 것은 패배자의 무기력한 행동일 뿐이다.

어쩌면, 생(生)에 대한 뭔지 모를 두려움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뭘까. 사람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부모로부터 생을 부여받았기에 그저 사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삶의 의미는, 목적은, 목표는 뭘까.

이순(耳順)의 끝자락에서도 아직까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를 모르고 산다. 

아니, 알고는 있지만 

세파에 찌들어 살다 보니 나이 들수록 하나씩 잊어가는 지도 모른다.

어쩌면, 잊는 게 아닌, 잃어버리는 지도….

이제 남은 내 생은 얼마나 될까. 짧으면 5년~10년, 길면 20년쯤 될까.

백세 인생이라고 하니 아마도 그쯤은 남아있을 듯싶다.

하지만, 사람의 수명을 어찌 인간의 능력으로 예측하고 판단할 수 있을까.

 

정말이지 뭘까. 이 나이에 갱년기의 늪에 빠져 든 것일까.

뒤늦은 일터의 젊은 친구가 한마디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자신의 좌우명이라며, 조금만 견디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독려한다.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이 세월을 견디고 버티며 살아온 삶에 대한 미련이 생긴 건지도….

인생이란 잠시 다녀가는 소풍길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한 번 왔다가 한 번 가는 소풍길…,

그 소중한 기억과 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도록 노력하자.

흘러간 것들을 붙잡으려고 하지 말고 다가서는 것들에 대해서도 막으려고 하지 말자.

소풍 가듯, 그저 웃으며 행복하게 살다가 가자.

 

용광로와 불가마와 같은 불볕더위…, 유월의 땅과 하늘이 들끓는다.

날씨가 더우니 더운 만큼 육신의 피로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겹친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폭염(暴炎) 아래에서 일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행복이라면 행복일 수도 있지 않을까.

 

'선생님께선 지금까지 살아오신 것 자체가 LOTTO입니다.'

 

옆자리의 젊은 친구가 하는 말을 긍정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여름으로 들어서는 새로운 한 달을 맞아 잠시 나태해지는 마음을 다잡아 본다.

권태기든, 갱년기든…, 만사가 귀찮고 짜증스러운 나날들…!

그 짜증스러움을 훌훌 털어내고 더 좋은 내일, 소풍 같은 인생이기를 기대한다.

하나도 맞지 않는 LOTTO의 번호들처럼

내 삶과 인생이 LOTTO가 되어서는 안 되겠기에….(24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