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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자작글

사랑과 우정 사이

 

 

사랑과 우정 사이 / 청송 권규학

 

 

너도 한 번 나도 한 번 누구나 한 번 왔다가는 인생

바람 같은 시간이야 멈추지 않는 세월 하루하루 소중하지

미련이야 많겠지만 후회도 많겠지만

어차피 한 번 왔다가는 걸 붙잡을 수 없다면

소풍 가듯 소풍 가듯 웃으며 행복하게 살아야지

 

가수 추가열이 부른 '소풍 같은 인생'의 노랫말처럼

누구나 한 번 와서 짧은 시간을 살다가 가는 게 인생이다.

그 짧은 시간 중에서도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

인연을 쌓고 저마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느끼며 사는….

숱하게 많은 인연 중에서 어떤 인연에서는 사랑과 우정을,

다른 어떤 인연에서는 미움과 증오를,

또 다른 어떤 인연은 그저 그렇고 그런 밋밋함을 느낀다.

 

인간의 인연이란 상대에 따라 많은 변화를 준다.

사람과 사람 간에도 이성(異性)인가, 동성(同性)인가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감정은 천차만별(千差萬別)이다.

남성에게서 받는 게 우정(友情)이었다면,

여성에게서 받는 건 사랑이었을까.

굳이 그런 구별은 없었던 듯싶다.

때론 남성에게서 사랑을…, 여성에게서 우정을 느낄 수도 있다.

에로스(Eros)나 필리아(Philia)적인 구별을 짓지 않는다면

남녀의 구별은 그리 중요치 않다.

사랑과 우정은 남녀 공용이다.

다시 말해서 이성 간의 사랑도, 우정도…,

동성 간의 사랑과 우정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굳이 아가페(Agape)와 스토르게(Storge)를 따지지 않더라도

사랑은 만국 공통어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만났던 그때 그 사람은 우정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무료하고 답답할 땐 잠깐의 만남만으로도 여유를 느낄 수 있고,

차와 식사를 함께 하고,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힐링이다.

복잡한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마음 맞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찌든 삶의 치유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만난 한 사람…, 어쩌면 그 사람은 사랑일 수도 있다.

처음 만날 땐 상큼함이었고, 두 번 세 번 네 번…,

만남을 이어갈수록 설렘이었다.

무엇이 좋았고, 또 무엇이 나빴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안 보면 보고 싶고 만나면 헤어지기 싫어지는…,  

그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감정이었으니

좋아한다는 것보다는 '사랑'이란 표현이 더 어울릴 성싶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에서 한두 명의 절친이 있을 것이다.

외로운 삶을 즐겁게 사는 유일한 이유가 바로 친구의 존재일 듯싶다.

친구…, 친구란 어떤 범위, 어떤 관계를 말함일까.

'사랑'을 표현한 그 사람 역시 '친구'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친구'란 결국 사랑과 우정을 포함한 광의의 정의로 보는 것이 맞을 듯.

이제는 친구도, 사랑도 그 어떤 존재조차도 없다.

'곁에 있을 때 잘해'라는 시대성 유행어가 떠오른다.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불어 사는 인생살이일지라도 어차피 인생은 혼자인 것을.

 

사람이 그리웠다

그저 눈길 마주하고 바라보기만 하는

그런 밋밋한 사람이 아니라

손을 마주 잡고 대화를 나누며

마음과 마음을 교환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네가 그리웠다

숲 속의 나무, 먼 산에 숨은 숲이 아닌

나무가 있기에 숲을 이루고

숲이 있기에 머물 수 있는

나무가 되고 숲이 될 수 있는 그런 너이기를

 

머물고 싶었다

발길을 멈추기에 머무름이 아닌

등짐으로 짊어진 삶의 멍에 모두 내려놓고

홀가분한 몸뚱이로 편히 쉴 수 있는

너와 나, 우리가 하나 될 수 있는 그런 쉼터에.

- 먼 길 돌아 나오며 -

 

가끔은 떠난 친구가 그리울 때가 있다.
봄바람 살랑이는 요즘 같은 때,
장맛비 추적이는 여름날의 저물녘,
가을바람 서성이는 숲길을 걸을 때나
하얀 눈이 나풀나풀 나비의 형상으로 흩날리는 겨울바다를 볼 때,
그때면 어김없이 한 사람이 생각난다.
비를 좋아한다던, 그래서 나도 덩달아 비를 좋아하게 만든 그 사람,
그도 가끔 나를 생각해 주기나 할까.

입춘(立春), 우수(雨水), 경칩(驚蟄)이 지난 3월…!
계절은 어느새 봄의 가운데로 깊이 뛰어들었지만
체감하는 봄기운은 아직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유난히 잦은 갑진년(甲辰年)의 봄비를 맞으며 무심코 '사랑과 우정 사이'를 들춘다.
살랑이는 봄바람만큼이나 설렘을 줬던 사람…, 비록 지금은 잊었을지라도
인생의 한 장을 차지한 귀한 추억으로 마음 안에 머문다.(240314)

 

      봄비 / 청송 권규학
      
      아침이 흔들렸다
      삭풍(朔風)에 움츠린 풀꽃들
      3월…, 가루비*를 타고
      산과 들녘 곳곳에 봄을 배달했다
       
      전원(田園) 뜨락엔
      진초록 수선화가 세수를 하고
      초롱꽃도 꿩의비름도 방풍나물도
      저마다 봄의 전령임을 자처하는
       
      집콕에 방콕에
      아무리 코로나가 발목을 잡아도
      다가서는 봄 앞에선 반항아일 뿐
      그저 뒷짐에 감염균을 숨긴 채
      봄의 길목으로 상춘행(賞春行)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고
      쏟아진 물을 다시 담을 순 없는 일
      잡은 권세 떨어지기 전에
      젊음이 늙어 시들기 전에
      한 발짝 그들 곁으로 가자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려니
       
      봄다운 봄을 오래도록 잊고 지낸 탓일까
      감염병에 잠식 당한 세월이 너무 길었음일까
      유난히 오는 봄이 기다려지는 오늘
      화양연화(花樣年華)*…, 이 아름답고 좋은 날
      너와 함께 한 세상 살고지고.(220319)
      
      
      * 가루비 : '가루처럼 가늘고 부스러지듯이 내리는 비'의 순우리말.
      
      * 화양연화(花樣年華) :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란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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