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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자작글

봄의 문(門)

 

봄의 문(門) / 청송 권규학

 

 

물오름달, 3월입니다

꽃샘바람 쌩쌩 불어도

꽃샘추위 꽁꽁 얼어도

땅속에선

새싹이 흙을 밀어 올리고

꽃나무엔 꽃망울이 불거집니다

 

땅의 겉가죽을 벗기면

겨울잠을 자던 토룡들이 꿈틀대고

수선화도 초롱꽃도 겨울초도

바짝 마른 상추의 묵은 대롱에도

파릇파릇 연둣빛 새싹이 움트는

뜨락 가득 봄치장이 한창입니다

 

우리 사는 집에 문(門)이 있듯이

땅에도 나름의 문(門)이 있습니다

봄엔 활짝 열고 겨울이면 닫는

계절을 관장하는 보이지 않는 문(門)

이제 봄, 땅의 문(門)이 열리면

수줍은 새싹들이 고갤 내밀겠지요

 

널브러진 화분엔 흙을 채우고

화단과 텃밭의 흙을 갈아엎고

밭이랑엔 정성스레 비닐을 덮습니다

햇살 따사로운 날

비닐을 뚫고 씨앗을 뿌립니다

시금치도 들깨도 쑥갓도 아욱도

한 구멍에 세 알씩 씨앗을 넣습니다

 

한 알은 새들에게

한 알은 벌레에게

다른 한 알엔 튼실한 새싹이 돋아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혹여 닫힌 마음이 있다면

수줍게 열어도 될 것 같은 그런 기분으로.(2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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