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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자작글

몽당연필-여생(餘生)-

 

 

몽당연필-여생(餘生)- / 청송 권규학

 

 

깎고 깎고 또 깎았습니다

쓰고 또 쓰고 다시 쓰다 보니

어느새 이토록 짧아졌습니다

이제 더 깎을 것도 없습니다

짧게 더 짧게 깎여진 몽당연필

내 남은 삶과도 같은

 

무엇으로 리필을 해야 할까요

종이를 감아도 보고

테이프를 붙여도 보고

볼펜 대롱에 끼워도 봤습니다

그런대로 쓸만했습니다만

어떡하나요, 이것마저 쓰고 나면

 

짧은 토막 끝의 까만 연필심

더는 깎을 것도 없는 몸뚱이지만

마음엔 연둣빛 새싹이 돋아납니다

깎인 세월의 뒤안길을 돌아보면

봄인 듯싶다가도 아닌 듯한

아지랑이 일렁이는 개울가

버들개지, 털북숭이 꽃을 피우는

 

앞산에선 뻐꾸기 뻐꾹뻐꾹

뒷산에선  비둘기 구구대는데

철들지 못한 마음이란 놈

물가를 서성이며 버들피리를 불고

수의(壽衣)를 갈아입은 몽당연필

해묵은 세월의 먼지를 터는.(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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