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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자작글

8월의 청도천에는

 

 

8월의 청도천에는 / 청송 권규학

 

 

6호 태풍 '카눈'이

한바탕 물폭탄을 쏟아붓고 떠난 자리

머리를 풀어헤친 8월의 샛바람*

아슬아슬, 청도천 윤슬*을 스칩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황톳빛 수면 위로

투명을 가장한 표면장력*이 뜨고

큰 물은

곳곳에서 끼어드는 계곡물을 껴안으며

태연한 듯 강으로 바다로 먼 길을 떠납니다

 

너는 언제부터 빗물이었으며

계곡물이었으며 실개천의 도랑물이었으며

크고 작은 강물이었으며 넓은 바닷물이었을까

따로 또 따로였다가도 어느 순간

따로 또 함께하는 빗물처럼

도랑물 실개천의 물처럼

강물과 바닷물처럼

안고 업고 서로 껴안다가

개천의 능력을 초과할 땐

예고 없이 거칠게 토악질을 쏟아내고 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시침을 뚝 뗀 채

강으로 흘러들어 바다와 합류하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네 세상살이도

거센 태풍 후에 깨끗이 사라지는

폭염과 오물 쓰레기처럼

세상사의 온갖 지저분한 일들

처음부터 없었던 듯 그렇게

세상이란 강물 위를

물빛, 투명한 윤슬로 덮어줬으면 합니다

그래서 태풍이 언제 지나갔는지

언제 그런 고난의 순간이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삶이 되게 해 줬으면.(230814)

 

* 샛바람 : '동풍(東風)'을 이르는 순우리말. 뱃사람들의 은어로 사용됨

* 윤슬 :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뜻하는 순우리말

* 표면장력 : '액체의 표면이 스스로 수축하여 가능한 한 작은 면적을 취하려는 힘'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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