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같은 인생 / 청송 권규학
공복(公僕)의 이름으로 살아온 40년의 세월…!
막지도 잡지도 못할 세월의 굴레를 따라 굽이굽이 돌고 돌았다.
고사리손 새싹에서 지학(志學) 약관(弱冠) 이립(而立) 불혹(不惑)에 지천명(知天命),
어느새 이순(耳順)의 문턱을 밟고 넘어 고희(古稀)가 코앞 …!
뜻을 세워 반평생 …, 정년(停年)에 이르러 은퇴를 거쳐 먼지(?)의 삶을 사는.
돌아보면 참으로 아지랑이처럼 가물가물한 감개무량(感慨無量)의 삶이다.
누구는 새싹이고 또 누구는 꽃이었을까.
누구나 새싹과 잎의 과정을 거쳐 꽃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익어온 삶,
결국엔 단풍과 낙엽과 먼지의 길을 걸어 한 줌 흙으로 돌아누울 인생.
인생…, 인생이란 무엇일까?
그저 제 잇속 챙기며 남들 앞에 떵떵거리며 살고 싶은 것이련만
그렇게 산다 한들 백 년도 채 못 사는 인생인 것을.
누구는 가진 게 없어도 늘 환하게 웃으며 살지만
다른 누군가는 가진 게 많은데도 나날이 찡그리고 화를 내며 전전긍긍
바쁘고 불안 초조하게 살아가는 모습…, 인간의 행ㆍ불행은 어디에서 찾을까?
잠시 왔다가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스크린의 한 장면 같은 것…!
결국 인생은 잠시 왔다가 가는 소풍 같은 것이거늘…
추가열이란 대중가수가 부른 '소풍 같은 인생'이란 노래가사가 뇌리를 때린다.
너도 한번 나도 한번
누구나 한 번 왔다가는 인생
바람 같은 시간이야
멈추지 않는 세월
하루하루 소중하지
미련이야 많겠지만 후회도 많겠지만
어차피 한 번 왔다가는 길
붙잡을 수 없다면
소풍 가듯 소풍 가듯
웃으며 행복하게 살아야지 .
그래, 그런 것이다.
인생이란 게 뭐 별것이라던가.
그저 한 번 왔다가 한 번 가는 게 인생인 것이다.
그런데도 인생을 사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거리고
상대를 밟고 올라서고자 긁고 할퀴는데 전력투구한다.
너와 나의 삶이 그렇고, 국내 정치판이 그렇고, 세계질서가 또한 그렇다.
세상에 태어나 가정을 꾸린 지 40년 세월…!
누구나 그렇듯이 좋은 일 나쁜 일, 기쁜 일 슬픈 일…, 지지고 볶으며 살아온 삶.
정녕 하루하루가 소중한 삶이었지만 어찌 좋은 일 기쁜 일만 있었을까.
만날 때 아름다운 인연이기보다는 헤어질 때 아름다운 인연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만남만 있고 헤어짐이 없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어차피 인생사…,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니 어쩔 수 없다는.
무엇이 사랑이고 또 무엇이 미움이었을까.
결국 사랑과 미움은 한 집에 사는 법…, 그저 마음 하나에 좌우되는 게 인생인 듯,
그저 아름다운 인연, 더 아름다운 삶이었음에 행복해 하자.
그대, 사랑하시나요
정녕 사랑한다면 자신을 죽이세요
사랑을 빌미로 사랑을 아프게 하는 건
미움보다 더 지독한 배신행위입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미움을 택하고선
사랑이었다고 억지 미소를 짓지 마세요
미움은 또 다른 미움을 낳고
두 번 다시 돌아올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사랑은 따로 또 따로가 아닙니다
가까이 있어도 먼 마음이기보다는
멀리 있어도 가까이하는 마음
따로 또 함께하는 열린 마음입니다
그대가 꽃이라면 나는 나비입니다
아무리 떼려고 해도 떨어질 수 없는 사이
사랑하기에 미워하는 것이라면
미워하기에 사랑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좋아한다고 해도
너무 미워한다고 해도 괴롭습니다
그렇다고 사랑도. 미움도 없이
돌처럼 무덤덤히 살 수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리움이 생기고
미워하는 마음에서 원망이 생기나니
밉다고 해서 괴롭히려고 하지 말고
사랑한다고 해서 집착하지 말 일입니다
오늘의 사랑이 내일의 미움이 되고
그 미움이 다시 사랑으로 돌아눕는 삶
어쩌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사랑과 미움은 한 집에 사는 건지도.
청송 권규학 시인의 열 번 째 시집 '홀로 피는 꽃' -사랑과 미움은 한 집에 산다'-중에서
짧다면 짧고 길다면 참으로 긴 세월이었다.
어쩌면…, 녹슨 철길을 걷는 마음으로 그렇게 살아온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른아른 평행선으로 뻗은 철길, 만날 수 있을 듯하면서도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그렇고 그런 삶을 위태위태하게 살아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설령 그렇다한들 어쩌랴.
그것이 운명이자 숙명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일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1.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내내 드러누워 지내는
만나려고 해도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여
무게에 대한 고단함
합칠 수 없는 감정의 안타까움
정해진 종착지에 대한 안도감
어루만지고 싶은 대견함
철길엔 흩어지고 남겨진 그리움이 얹혀있다
차창 밖, 코스모스와 강아지풀이 일렁이고
가을강의 물안개에 애잔함이 피어나는
어느 것이나 비슷하지만
저마다 다양한 풍경이 스며든 철로
동그마니, 가을빛 물든 하늘 아래
패랭이꽃을 닮은 꼬부랑 할마시
누렁이와 대합실 앞을 지키는
번잡하거나 거창하진 않더라도
처연하고 질곡 같은 삶의 기억이 숨 쉬는 곳
간이역…, 지난 시간을 풀무질하는.
2.
알록달록, 코스모스 숲길에
녹슨 철로가 나란히 누웠다
숱한 시간과 꿈을 실어 날랐던
지난 세월의 옥진 흔적들
육중한 열차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하다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바라보면
부식된 철길에 불과하겠지만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서서
망원경으로 바라보면
먼 세월의 연륜이 보일 것이고
현미경을 들이대면
가까운 시간의 삶이 올올이 드러난다
지금은 비록 숨죽인 채 누워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길을 오갔으며
또 얼마만큼의 사연이 이 길에 녹아들었을까
문득, 고임목에 묻은 기름때처럼
철길에 새겨진 옛 이름을 불러본다
말이 없다, 대답도 반응도 없다
낡은 철로를 따라
살살이꽃, 살랑대는 교태 춤 밖에는.
3.
발걸음 내려놓기 전에는 몰랐다
그저
차가운 땅바닥에 기다랗게 누워 지내는
너의 온몸에 젖어 있는 슬픈 외로움을
발걸음을 옮겨놓으며
사람이나 철길이나
서로의 마음을 주지도 않으면서
그저 그럴 거라고 지레짐작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복부를 질주하는 철마에게
제 가진 모든 걸 내어주는 너
그런 너를 보면 매우 기쁘지만
그런 너이기에 너무 슬프다.
4.
새벽녘, 차가운 땅바닥
흐르는 시간 속에 허리를 누인 채
살아도 살아 있지 못한 생명
철마의 질주에 온몸을 맡기고
끝 갈 데 없이 평행으로 뻗어
말없이 쳐다보는 싸늘한 눈빛
시간과 함께 젊음이 흐르고
젊음 속에서 사랑이 여무는
낭만이 사는 겨울 철길, 그곳에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진리가 있다
흐르는 시간과 함께 사라져 버리는 사랑도 있지만
시간 안에서 끝까지 지속되는 사랑도 있다는.
청송 권규학 시인의 열 번 째 시집 '홀로 피는 꽃'-철길을 걸으며- 중에서
삶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참으로 먼 길을 돌아왔지만 처음의 마음과는 너무도 다른 이방인(?) 같은 그런.
잡으려 하면 더 멀어지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정작 내버려 두면 다가서려고 하는.
너무 늦게 철이 든 탓인지,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탓이었는지.
어찌 되었든, 지나간 일을 되돌려 다시 뒤틀린 궤적을 짜 맞추려는 짓은 잘못임을 안다.
그저 살아온 삶은 지난 삶으로 인정을 하고 그 삶 자체만으로 만족을 하자.
인생이 어찌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만 남은 삶을 후회 없도록 만들어 보자.
후회 역시 후회의 한 장으로 남겨 두고 이젠 정말 눈물보다는 웃음이 많은 날로 가꾸어 가자.
먼 길 돌아 나온 내 삶이 부끄럽지 않도록 그렇게 '소풍 같은 인생'이 될 수 있도록.
1.
사람이 그리웠다
그저 눈길 마주하고 바라보기만 하는
그런 밋밋한 사람이 아니라
손을 마주 잡고 대화를 나누며
마음과 마음을 교환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네가 그리웠다
숲 속의 나무, 먼 산에 숨은 숲이 아닌
나무가 있기에 숲을 이루고
숲이 있기에 머물 수 있는
나무가 되고 숲이 될 수 있는 그런 너이기를
머물고 싶었다
발길을 멈추기에 머무름이 아닌
등짐으로 짊어진 삶의 멍에 모두 내려놓고
홀가분한 몸뚱이로 편히 쉴 수 있는
너와 나, 우리가 하나 될 수 있는 그런 쉼터에.
2.
길었습니다, 지지리도
정녕 길었습니다, 당신이 떠난 하루는
멀기만 했습니다, 너무나도
지루했습니다, 일일여삼추(一日如三秋)처럼
체취라도 느낄 수 있기를 바랐지만
먼 허공만 쳐다보고 말았습니다, 바보처럼
그저 지우고 싶은 하루였지만
그럴수록 확연히 떠오르는 당신의 얼굴
목소리만이라도 듣고 싶습니다
전화하세요, 내일은 꼭.
3.
참으로 요지경 속
우리네 사는 세상
겉으로 보기엔 파란 껍질
쪼개면 빨갛게 익은 속살
겉 다르고 속 다른 수박이다
속고 속이며 사는 세상살이
실패한 사랑 때문에
실패한 사람 때문에
실패한 인생 때문에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인생의 밑바닥에 내려갔다고
그곳에 주저앉을 일도
실망하지도 말 일이다
여름이면 거센 비바람으로
가을이면 짝 잃은 기러기로
겨울이면 긴 외로움으로
봄이면 또 꽃으로 찾아오겠지만
늘 다른 듯 같은 느낌의 사랑
하늘의 별은 멀어도 볼 수 있지만
바로 곁에 있는 그리운 사람은
왜 볼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걸까
하늘의 조각달이 참으로 밝은 밤
밤이 깊고 어둠이 짙은 탓이겠지만
불 꺼진 창을 대신하는 달그림자
그늘 밖
처절하도록 아름다운 달빛, 교교롭다
사랑의 최고 종교는 솔직함이거늘
진실마저도 투영되지 않는 현실
이른 새벽의 찬 기운이
서리로 모여 창공을 적시는 시간
짙은 안개가 깔린 호수 위로
눈이 보지 못해도
마음으로 찾는 그리움이 달달하다.
4.
그립고 보고 싶어 다시 돌아왔습니다
곧고 바른길 그대로 달려올 걸
오랜 세월 먼길을 돌고 돌았습니다
곧은길이 아닌 굴곡진 길이었기에
아무도 모르는 슬픔과 뼈저린 아픔들
거친 그 길을 지나며 많은 걸 깨달았습니다
세상살이 기쁨만 있는 게 아니란 걸
기쁨 뒤에는 더 큰 슬픔도 따른다는 걸
기쁨과 슬픔은 마음 안에 있다는 걸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힘들고 고달픈 일, 길섶에 내려놓고
아름답고 소중한 느낌으로만 채우고 싶습니다.
청송 권규학 시인의 열 번 째 시집 '홀로 피는 꽃'-먼 길 돌아 나오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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