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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자작글

감꽃이 필 때

 

감꽃이 필 때 / 청송 권규학

 

 

봄이 오면

뜨락 가득 봄꽃이 핍니다

긴 겨울을 기다려 싹을 틔운 후

샛노란 꽃을 피운 동초(冬草)

하얗게 빨갛게 꽃망울을 내미는

영산홍 꽃잎에 봄이 묻어왔습니다

 

매년 이맘때면

파릇파릇 새싹을 내밀던 감나무가

웬일인지 올해는 늑장을 부립니다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앞집 옆집 온 동네 감나무엔

파랗게 감잎이 피었는데

내 집 감나무엔 잎조차 피지 않은 이유를

 

지나던 길손의 대화가 생각납니다

저긴 무성한 잎 여긴 앙상한 잎

'왜 차이가 나는지 아니?'

'저긴 진짜 농부, 여긴 가짜 농부'

감잎만 보고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는

길손의 지혜와 안목이 부럽습니다

 

그런 건가 봅니다

농부의 발자국소리에 농작물이 자라듯이

해마다 살충제와 영양제로 관리한 이웃과

그냥 빨대를 꽂아 연시만 얻었던 나

감나무가 미리 알고 반응하는가 봅니다

 

봄은 꽃들에만 찾아온 게 아닌 듯합니다

머잖아 꽃을 피울 뜨락의 감나무

뒤늦게 피우는 감잎이 더 사랑스럽습니다

볼록볼록 고갤 내미는 감잎 싹을 보며 

계절의 봄과 함께 올 삶의 봄날을 기대합니다

올해는 넉넉한 정성을 주리라 다짐하면서.(23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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