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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자작글

눈 오는 산-봄을 찾아 나서자-

 

다지마 신지의  '눈 오는 산'-봄을 찾아 나서자-

 

4월이다.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인 잎새달!

산과 들엔 파릇파릇 생명이 태동하고 오가는 사람들의 옷깃에선 볼긋볼긋 생기가 쏟아진다.

그 지루했던 코로나의 상징인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너도 나도 손에 손을 잡고 상춘(賞春)을 즐기는 가족단위 여행객들에서 행복을 맛본다.

이제 코로나의 위기는 벗어난 듯하지만 심각하게 뒤틀린 세계질서의 혼잡한 문제들이 해결되고,

그로 말미암아 국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적인 어려움들이 해결되었으면…, 한다.

정말이지 너무도 혼탁한 세계정세, 그보다 더한 국내 상황들…, 나라 안팎의 심각한 현실을 보며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일본인 작가 '다지마 신지'의 '눈 오는 산'이란 소설작품을 떠올린다.

읽은 지 제법 오랜 시일이 흘렀지만 오늘날의 사회현실에서 나름 교훈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처음 이 책을 잡은 순간,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환경문제와 인생 삶의 어려움 등을 다룬

작품일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예상과는 달리 거만하게 폼을 잡고 있는 원숭이들의 모습과

웅장한 산의 모습이 책장을 넘기는 순간 펼쳐졌다.

일단 책 속에 그림이 등장해서 꾀죄죄한 글씨가 빼곡하게 들어찬 교훈서에 비해 다소 부담이

줄어들었고, 또 무엇보다도 이 책의 작가가 일본인이라는 점에서 왠지 모를 호감이 갔다. 

솔직이 지금까지는 일본이란 나라는 좋지 않은 역사적 인연이 얽힌 나라이기에 부정적인

성향이 깊어서 일본인이 쓴 책이라면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고, 또 일본이라면 무조건 반대하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케하라 마모루'의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이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雪國)'이라는 소설의 아름다운 영상이 떠올라 읽게 되었다.

 

작가 '다지마 신지'는 1947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뒤, 

독일과 인도에서 철학과 교육학을 공부했다. 

동경의 유네스코 아시아 문화센터에서 일하기 시작한 1977년 이후 어린이를 위한, 

그리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문맹퇴치를 위한 공동출판에 힘쓰고 있다.

20년 전 작가가 아직 학생이었을 때 가까운 수족관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수족관에서 병들어 신음하고 있는 거북이 한 마리와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 큰 거북은

큰 눈을 깜박이며 작가에게 무언가를 쓰라고 권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 소설은 동물들에게 받은 메시지들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인간 삶의 방식을 지닌 동물들의 절규와도 같은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깊은 산속, 인간의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원숭이 산에, 그 해는 계속해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

계속되는 폭설로 인해 원숭이들은 식량을 구할 수가 없었고, 가을까지 모아 두었던 식량들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장 원숭이는 몰래 마을로 내려가서 인간들의 식량이라도 훔쳐오려고 하였다.

하지만 계속되는 폭설과 지난해의 흉작으로 인간들도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현상을 목격한 대장 원숭이는 원숭이 산의 위협을 느낀다. 

왜냐하면 계속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인간들이 곧 원숭이 사냥을 하기 위해 원숭이 산을

침략해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장 원숭이는 산에 올라 혼자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다. 하지만 뾰족한 방안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원숭이 산에서는 반란이 일어난다. 노인들의 식량 배식을 줄이고 강한 놈만 식량을 주어

원숭이 산의 종족번식과 강한 놈들만 살아 남자는 식의 논리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켜왔던 윤리를 지키자는 보수파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서로 양보가 없는 팽팽한 대립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 꼬마가 

'봄이 오기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봄을 찾아 나서자'는 실로 파격적이고 창의적인 제안을 했다.

무모하다고 생각했지만 봄을 찾아 나선 원숭이들은 결국 봄을 찾게 되고, 원하던 식량을 구하게 된다.

 

비록 동물을 의인화하여 전개한 소설이지만 그것은 동물의 세계가 아닌, 우리들 인간군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약에 봄을 찾아 나서지 않았더라면 아마 늙은 원숭이들,

아니면 젊고 강한 원숭이들 중에 어느 한쪽은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극한 상황 속에서만 발휘될 수 있는 재치를 느낄 수 있었다. '봄을 찾아 나선다'는 적극적인 사고와

어린이의 말일지라도 심사숙고해서 받아들인 대장 원숭이의 결단력이 돋보인다.

 

과연 2023년,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우리는 지금 어떠한 현실에 직면해 있는가.

'문재인 정부'가 막을 내리고 '윤석열 정부'로 교체된 지도 한 해가 지났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정부는 정부 대로, 야당은 야당 대로 제 논에 물을 대려는 아전인수적 행동만 떠 벌렸을 뿐

도대체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너무 가혹한 평가일까?

정부 여당인 '국민의 힘'은 상대당의 자중지란(自中之亂)에서 얻은 어부지리(漁父之利)로

정권을 잡았지만 자신들의 잘못으로 국민들에게 버림받아 국회를 헌납하였고,

여소야대의 정치구조에 밀린 채 결국 숫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정책추진은

물 건너 간 채 온종일 끌려가는 구걸형태의 국정수행에 발목이 잡혀 있으며,

지난 정부와는 달리 강경한 대북정책(?)과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실정(失政)을 덮고 있다.

그렇다면 189석이란 의석을 가진 거대야당은 뭘 했는가?

자신들의 자중지란으로 고스란히 상대당에 정권을 내어주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내로남불에, 딴지(?) 걸기식의 무개념적 떼쓰기로 일관하고 있고, 

당대표의 사법리스크에 발목이 묶인 채 방탄을 위한 정부여당의 발목 잡기에만 혈안이 된

꼴불견적 행태로 전락하고 있다.

국정질문에서도, 회의석상에서도, 국회의원들의 모임과 회합장은 한 마디로 X판이다.

트집 잡기, 상대편 비난하기, 마타도어식 표심 얻기 등 초등학생들의 반장선거나 학급회의에서도,

시골 동네 이장단의 마을회의에서도 나오지 않을 거친 말과 상대편 깎아내리기가 통상이다.

한 마디로 오늘날의 정치판은 초등학교나 동네 이장들, '눈 오는 산'에 나오는 원숭이들보다도 못하다.

 

제대로 된 리더가 나타나 조직의 미래를 끌고 가든가, 조직의 모두가 리더를 떠받들어 제대로 된

조직을 만들어 가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시해서 한 방향으로 나가든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채 바다 한가운데의 돛배처럼 갈팡질팡 우왕좌왕하며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는…, 스스로 리더(?) 임을 자청하는 사람들의 행동거지가 참으로 꼴사납다.

방송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그런 모습들은 상상할 수 없으리만치 빠르게 확인되기 때문에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되며,

또 거짓을 숨길 수 없을 만큼 그것을 확인하는 매체가 다양하고 그 폭이 넓다.

 

국회의원이란 직업은 무엇인가?

국회의원은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대변자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국회의원은 제국주의 국가의 황제나 왕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방송을 통해 접하는 국회의원들의 후안무치한 행동은 도를 넘어선다.

시대를 뛰어넘어 대정부 질문이나 국정질문장에서의 국회의원들이 행하는 행동은 황제보다도 더하다.

정무직 장관을 향해 부하직원이나 철없는 어린아이를 다루듯 호통을 친다거나

'깐죽댄다'느니, '여우 같다'느니조롱과 비하가 섞인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국가원수를 상대로 '깡패'라느니, '도둑'이라느니, '매국노'라느니, 퇴임 후 감방에 간다느니, 하는

선을 넘거나 저급한 말들은  초등학교 학급회의에서도, 동네 이장회의에서도 등장하지 않는 말로써

치의 민주화가 아니라 자격지심과 오만함, 인격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저속함이다.

하물며 정부여당의 수석 최고위원의 입에서 '표를 위해서라면 조상묘도 판다'고 했다.

도대체 이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누가 국회의원에게 이토록 오만한 말을 해도 된다고 했으며,

누가 그들에게 그런 말을 해도 된다는 특권을 부여해 준 것인지,

참으로 아연실색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국회의원이란 직업과 국회의원의 서열은 어디까지인가?

국회의원은 국회의원다워야 한다. '답다'는 건 자격이 있음을 이르는 것이며,

'답지 못하다'는 건 자격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일국의 국회의원이라면 한 지역의 리더이며, 교양과 지혜를 갖춘 인격체이다.

스스로 국회의원이고 싶다면 남이 보든 보지 않든 자신의 행동거지를 살펴야 한다. 

국민이 그들을 국민의 대변자로 선출한 이유는 그만큼의 지식과 상식, 그에 상응하는 인격을

갖추었기에 국민 대신, 국민에게서 받은 권한을 사용하도록 허락한 것이다.

그런데 뽑히기 위해서라면 갖은 아양을 다 떨고 할 짓 못할 짓 다했으면서 뽑아주기만 하면

안면을 싹 바꾸어 안하무인이 되어 국민을 우습게 알고, 국민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더는 참을 수가 없다. 침묵하는 다수의 입들이 나라를 위해 제대로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내로남불에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식으로 일단은 딴지를 걸고 보는 야당은

'다 함께 딴지당'이 아닌, 정통 야당의 색깔을 조속히 찾아가기를 바라고  

여소야대 정국에서 뚜렷한 정책대안이 실종된 채 표류하는 여당은

'백성의 짐'이 되지 않도록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제대로 일하길 간절히 촉구한다.

 

이제 1년 후인 내년이면 총선이다. 혹시나 하고 찍었는데 역시나로 돌아 올 게 뻔하다.

그렇다면 정말이지 내년엔 현직 재선 이상 국회의원들에게 단 한 표라도 주지 말았으면 좋겠다.

정치경험은 적을지라도 순수하게 정치를 할 수 있는 참신한 신인에게 한 표를 주고 싶다.

진정 욕심이 뚝뚝 묻어나는 정치꾼이 아닌, '원숭이 산'의 꼬마 원숭이에게, 초등학생에게,

동네 이장에게순수한 정치신인에게 소중한 한 표를 던지고 싶은.

 

오랜만에 '자유의 방패(Freedom Shield)'란 이름으로 실시된 한미연합훈련과

이와 연계해서 실시된 한미일 연합훈련에 반발하여 거듭되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직면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조치에 손발을 맞추고는 있지만, 우리는 손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강 건너 불구경식의 상태에 머물러있다. 미국, 일본, 중국은 그들대로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한

축소지향적인 정책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좁은 틈새를 비집고 다소의 문제들을 어느 정도

해결할 듯싶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회 저변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곤 한다.

거세게 살아나는 정치판의 당리당략적 틀 짜 맞추기와 이제 겨우 쪽박 찬 거지신세를

벗어나긴 했지만, 가시밭길 같은 세계경제의 풍파 속을 뚫고 나가기까지에는 우리 경제의 앞날을

안심할 수 없는…, 표류한 쪽배의 상태에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기에 살아남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내게 이 책은 정말 지금껏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지 못했던 숱한 일들을 떠올려 생각하게 했다.

특히 국가경제의 파탄으로 몰아닥친 대량 실업사태와 뒤죽박죽으로 섞여버린 정치판…,

삭막하기 이를 데 없는 사회 현실 속에서 암울하게만 보이는 미래를 향해 

지푸라기라도 잡을 양으로 악착같이 살고픈…, 그러나 마땅히 비빌 언덕이 없어 헤매는 사람들에게 

삶을 살아가는데 작으나마 참된 스승이 되어 줄 이 책을 읽게 하고픈 간절한 마음이 생겨났다.

 

세상에 존재하려면 경쟁해야 한다.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논리가 적용되고 있는 세상에서 더 이상 머뭇거리다간 낙오되기 십상이다.

청년실업의 거대한 폭풍으로 힘들어하는 20대의 모든 젊은이들이여!

살아서 숨 쉬고 있고, 또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것을 축복으로 알라.

그리고 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다시 한번 도약의 준비를 하라.

인생의 멋을 창조할 30∼40대 이상의 중년들이여!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빠른 시기임을 알라.

그리고 인생의 후반기를 새롭게 가꾸어 갈 준비를 하라.

지금도 고민하고 있을 수많은 젊은이들과 당당하게 사회생활에 임하고픈 30∼40대 중년인들,

그리고 인생의 참 맛을 느낄 줄 아는 성숙한 50대 이상의 중장년들에게…,

발간된 지 조금은 오래되었지만, 그리고 우리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일본인이 쓴 책이지만

이 책, '눈 오는 산'을 통해서 '인생을 사는 참된 지혜'를 얻게 되기를 간절히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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