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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자작글

비움과 채움의 현주소

 

비움과 채움의 현주소 / 청송 권규학

 

 

해거름, 작은 암자의 뜨락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봄을 밟고 드러누운 겨울 이파리들

빗자루를 대각으로 세워

어둠을 쓸고 있는 스님을 본다

 

세상살이에 지친 고된 삶

살면서 쌓인 숱한 잡념들

말하지 못한 희로애락(喜怒哀樂)

수없이 밟힌 세속의 흔적들

수행이란 이름으로 빗질을 하는…

 

겨울나기를 끝낸 봄 마당에서

내 가치를 빛낸 비움은 무엇이었고

나를 살 찌운 채움은 무엇이었는지

방하착(防下着) 착득거(着得去)*

비움과 채움의 현주소를 살핀다

 

행여 우리가 알고는 있었을까

애정이 넘치면 집착(執着)이 되고

집착이 넘치면 독점(獨占)이 되고

독점이 과하면 광기(狂氣)가 되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우리 삶을.(230330)

 

* 방하착(防下着) 착득거(着得去)

'내려놓아라(防下着)' '지니고 가다(着得去)'는 뜻을 가진 불교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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