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 고장 이모저모

청도, 한재마을 ‘자작거림’의 봄

 

청도의 볼거리

 

       청도, 한재마을 ‘자작거림’의 봄

 

 

온 들녘에 봄이 널렸다.

하양 빨강 노랑 연분홍 아름다운 봄꽃들, 계절의 옷장에 숨겨 둔 봄옷들이 일제히 일어선다.

청도천 강변을 따라 자연이 가꾸는 형형색색의 꽃밭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찰랑이는 청도천의 맑은 물소리를 듣노라면 이름 모를 풀꽃들의 어울림과 보이지 않는 숱한 생명이

마중을 나오고 그들이 주는 온기에 몸과 마음이 포근해진다.

 

 

억새 숲에 바람이 분다. 억새 숲을 지난 바람은 물결소리 못지않게 거칠다.

아직은 채 벗어던지지 못한 겨울옷을 걸친 채 흔들어 대는 억새의 춤사위 역시 까칠하다.

누군가를 향한 자연의 울림일까. 시간이 두근거림으로 흐른다.

그 많았던 풀꽃들의 씨앗은 어디로 숨었는가.

역사와 자연이 만든 기적의 땅 그곳에, 억새의 그림자가 슬금슬금 빗살무늬로 바닥에 드리운다.

하늘이, 강이 날린다. 진초록 풀 안에 숨어있던 푸른빛이 깨어나 하늘을, 강을 닮아간다.

 

 

바라볼 수는 있으나 만져볼 수 없는 하늘과 강, 투명한 수채화 한 폭, 자연이 그린 몽환(夢幻)의 풍경을 본다.

가뭇없는 지평선의 여명(黎明), 잠자는 숲이 꿈틀거린다.

계절이 지나는 것이 두려운지 늑장을 피우는 나무,

색색의 물감을 뿌려놓은 파스텔 색조의 반영이 은은히 드리운다.

자연이 그린 달빛과 물빛과 쪽빛으로 만난 한 폭의 그림을 본다.

두 눈 가득 아름다운 풍경을 담았지만 아련하게 감도는 건 여전히 그리움이다.

 

‘숲에 가고 싶다’, 아니, ‘가지고 싶다, 나만의 숲’을….

 

이왕이면 나무 중의 신사(紳士)인 자작나무 숲이면 더 좋겠다.

새하얀 몸뚱이를 흔들어 대며 보는 이를, 느끼는 이를 유혹하는 자작나무 숲!

그 숲에는 어떤 요정이 살고 있을까. 문득 자작나무 숲에 머무는 아름다운 요정이 보고 싶다.

 

 

오래 전, 강원도 인제의 모 부대에서의 군 복무 시절,

인근의 수산리와 원대리의 자작나무 숲을 다녀온 적이 있다.

어느새 40년을 훌쩍 뛰어넘은 세월의 더께 너머 그때 본 그 숲은 그저 아름다운 숲일 뿐,

다가서는 느낌은 놀랍지도 특별하지도 않았으며, 그냥 무턱대고 즐거울 뿐이었다.

아마도 그때는 숲에 대해서, 자연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그때 그 숲에 대한 기억이 지금에 와서 이토록 특별한 감정으로 다가서는 건 무슨 이유일까.

자연을 있는 그대로 옮기려면 넉넉한 시간과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늘 생각은 하지만 생각만으로 끝나는 생각의 무더기들…, 속삭이는 자작나무의 노래를 들으며,

발아래 풀꽃에 눈을 맞추고, 손톱보다 작은 풀벌레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것,

제각각 풀들의 이름을 헤아리고 그 생김새를 비교하는 것, 그 모든 게 자연과의 진실한 대화이다.

 

 

숲 동무의 이끌림에 내디딘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청도와 밀양의 경계지점으로 접어든다.

미식가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지명…, 미나리 생산지로 전국 최고의 유명세를 타고 있는 ‘한재마을’…,

도로변 곳곳에 ‘한재 미나리’, ‘미나리 먹는 곳’이란 입간판이 즐비하다.

달리던 속도를 늦춰 주변을 돌아보노라니 마을 초입에 ‘관술 IT교육연구소(觀術 IT敎育硏究所)’란 이름의

독특한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자세히 보니 큰 간판 아래 ‘자작거림’이란 작은 글씨도 있다.

바로 이곳인가. 강원도 인제가 아닌, 경상북도 청도 땅에 자리를 잡은 자작나무 숲…!

도로변에서 바라본 풍경엔 아무것도 포착되지 않았다.

오르막을 거슬러 오르니 제법 규모가 있는 건물이 드러난다.

등 굽은 능선이 시설을 감싸고 있는 계곡, 양팔을 벌려 품어 안은 듯 누군가의 정성으로 빚은

‘자작거림’의 터전이 고스란히 두 눈에 잡힌다.

 

 

황토로 빚어진 숙소를 비롯하여 많은 인원을 동시에 교육할 수 있는 넓은 강당, 소조별 분임토의를

할 수 있는 여러 개의 룸과 오카리나 연주 장비까지 갖춘 ‘관술 IT교육연구소(觀術 IT敎育硏究所)’!

건물 주변은 물론이려니와 정갈하게 다듬어진 산책로들…, 산책로 좌우로 수령 10년을 밑도는 편백나무와

벚나무들이 질서 있게 자리를 잡았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편백나무, 참나무류, 멀구슬나무, 영산홍, 쥐똥나무, 고광나무, 물박달나무 등

다양한 목본(木本)을 만났었고, 복수초, 노루귀, 알프스민들레, 금(은)대난초 등 고급 야생화와

토종 식생인 냉이, 지칭개, 봄맞이, 꽃다지, 젓가락나물, 양지꽃, 질경이 등의 초본(草本)과 대화도 나누었다.

산책로 끝 지점의 정자에서는 가쁜 호흡을 다독일 수 있도록 한 주인장의 배려심도 읽을 수 있었다.

 

 

물박달나무 앞 정자 마루턱에 앉아 숨을 고른 후 고개를 들자 은빛 섬광이 두 눈을 채운다.

계곡과 능선 사이, 마치 은가루를 뿌린 듯한 자작나무 숲…, 나무들이 한데 엉켜 키 재기를 한다.

정말 자작자작 소리를 내는지 태워보고 싶은 충동에 빠졌다가도 자작자작 대화를 나누는 듯한 정겨움에

귀가 솔깃해져 자신도 모르게 자작나무 숲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자작나무 밑둥 길섶으로 이제 막 봄을 맞은 노루귀가 얼굴을 내민다.

쏘옥쏘옥 고개를 밀어 올린 노루귀의 앙증스러운 모습에 숲 동무들이 연신 외마디를 토해낸다.

긴 겨울을 이기고 세상과 첫 대면하는 예쁜 아이들…, 그 천진스럽고 귀여운 모습을 보고서

누가 있어 ‘어머 어머’ 감탄사를 아끼리.

자작나무의 생육환경이 주로 한국 북부와 일본, 중국, 시베리아 동부 등지에 분포하는 나무이기에

이곳 청도지역에서 자작나무 숲을 볼 수 있다는 건 대단히 운이 좋은 경우로써 고마워할 만한 일이다.

잘 모르는 사람은 자작나무와 비슷한 은수원사시나무(은사시)를 자작나무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봄이라 하기엔 아직은 이른 계절, 겨울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있는 시기인지라

초록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지 못했고, 밤이면 손에 잡힐 듯한 앞산마루 위의 별을 따는 경험을 갖지 못해

‘자작거림’의 가치를 제대로 누리지 못함이 못내 아쉬웠다.

 

숲을 바라본다

오래도록 앉아 있거나 서성이듯 걷는다

사위(四圍)가 고요히 익어가는 시간

나무 사이를 물들이며 천천히 누린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겨울 하늘과

하얗게 드러난 자작나무의 어울림

맑은 눈을 가진

어느 소녀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나무 숲을 걷는 내내 단꿈에 빠져든다

향긋하고 새하얀 꿈

잊힌 기억처럼 하얗고 찬란하다

자작나무 숲에는 순백의 신성함이 살아 숨 쉰다

그래서 치유의 숲인가 보다

 

하얀 숲에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면 잎새만 스치고 말 일이지

자작자작, 생경스런 소리를 낸다

 

하얀 숲에 햇볕이 스며든다

햇살이 비추면 눈을 마주하고

그저 손을 뻗을 일이지

꼿꼿이 등지고 서서

쭉 뻗은 검은 다리를 길게 늘어뜨린다

 

어느새 하얀 숲에 눈(雪)이 번진다

눈이 오면 켜켜이 쌓일 일이지

뽀얀 살결에 차가운 눈을 촉촉이 배어 안는다

 

하얀 숲에 어둠이 내린다

깜깜한 밤이 오면

느긋이 잠들고 말 일이지

하얀 별을 숲 속 가득 드리운다

 

계절에 따라 바람이 바뀌고

몸짓과 색깔이 달라지는

언제나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

그곳에

어느 여인의 아름다운 사랑이 도드라진다.

 

- 권규학의 시 / 자작나무 숲, 그 고혹의 기억 속으로 -

 

 

긴 겨울의 끝에는 반드시 봄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코로나에 찌든 일상들, 사회적 거리두기와

사람과 사람 간의 격리된 삶, 그 길고 긴 외로움의 늪에서 탈출하려면 자연과의 만남이 최적이다.

청도는 산과 물, 그리고 넓은 들판을 고루 갖춘 살기 좋은 고장으로 평판이 자자하다.

하지만 그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청도를 찾는 사람들에게

자연이 주는 혜택을 고르게 나눠주지 못한다는 게 참으로 안타깝다.

 

 

청도엔 화양읍성과 신화랑풍류마을을 포함한 몇몇 지역에 문화관광해설사를, 운문산 입구 생태탐방안내소에 자연환경해설사를 운용하고 있으나 숲해설은 운문산 자연휴양림을 제외하곤 전무하다.

최근 자연과 가까이하는 치유의 삶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추세인 바,

이는 공원이나 자연휴양림, 또는 도시 숲을 활용한 숲해설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려는 바람(望)의 일환이다.

청도지역에는 기존의 운문산 자연휴양림이 있고, 각북면에 새로운 자연휴양림이 개장을 앞두고 있는 바

이곳 ‘한재마을 자작거림’까지 활용하여 숲 체험교육을 추진한다면 지역민은 물론이려니와

청도를 찾는 사람들에게 한 단계 높은 차원의 힐링(치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재마을 자작거림’은 사유지이기에 그 특성상 시설관리를 포함한 일정 부분의 경비가

소요될 수도 있을 것이며, 찾는 사람들의 다양성에 따라 발생하는 각종 후유증 역시 극복해야 할 사안이다.

코로나로 인해 교육이 없는 요즈음엔 상관이 없겠지만

교육으로 바쁜 시기엔 일반인들의 방문을 제한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방문하기 전에 반드시 방문일정을 조율해야 하며, 방문을 했을 시엔

산나물 채취 및 자연식생의 훼손이나 쓰레기의 무단투기와 같은 행위는 절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오늘도 코로나의 위세에 눌려 마스크 뒤에 숨은 채 그렇고 그런 은자(隱者)의 하루를 살았다.

‘믿기에 사랑하고, 사랑하기에 믿는 마음처럼’, 삶이란 게 그렇고 그런 것인가 보다.

눈을 뜨면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또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늘 별 일 없이, 별 탈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

그러고 보면 그렇게 사는 삶 자체가 별 일이고, 별 탈이다.

은퇴자인 나의 눈에 비친 세상은 조금은 밋밋한 느낌, 어쩌면 그것마저도 특별한 것인지도 모른다.

가끔은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충동도 있다. 좋은 동무와 함께 근사한 카페에 들려 차도 마시고,

홍등이 번쩍이는 술집에 가서 요염한 안주인이 따라주는 술이라도 한 잔 곁들이며,

가끔은 토끼처럼 착하게, 때로는 여우처럼 요염하게, 늑대처럼 거칠게 반항하고도 싶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자연으로부터 깨우침을 얻는 게 가장 좋은 인생일 것인 바,

한재마을 ‘자작거림’을 찾아 자연이 주는 향기를 통해 코로나에 지친 심신을 달래고

치유(healing)의 기쁨을 만끽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인생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