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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자작글

친구의 부고(訃告)를 접하고

 

 

 

친구의 부고(訃告)를 접하고 / 청송 권규학

 

 

시시 때때, 청첩과 부고(訃告)가 번갈아 옵니다

아무개 자녀의 혼사(婚事)가, 아무개 부모의 타계(他界) 소식이.

아, 그럴 나이이지. 부모들은 떠나고 자식들은 짝을 찾고…,

인생이란 게 그렇게 익어가는가 봅니다

 

언제부턴가 자녀들의 혼사 청첩이 뜸해지더니

가끔, 조금씩 자주…, 부고(訃告)의 횟수가 잦아집니다

아무개 부모님의 부고(訃告)가 아닙니다

아무개 본인상(本人喪)…, 할 말을 잊게 하는 소식입니다

열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벌써 수십 명이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때 친구로 만나 우정을 나눈 사람들…, 

먼저 가면 형님이 되고 나중에 가면 동생이 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오는 걸 막을 수도, 가는 걸 잡을 수도 없는…, 이 나이라는 놈, 세월이란 놈,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오늘 또 한 명의 친구가 세상을 떠나 형님이 되었습니다.

비 내리는 어린이날, 입하절기(立夏節期)…, 떠난 친구를 위한 하늘의 눈물.

어쩌면, 슬픔이 아닌 기쁨일지도 모릅니다.

 이 복잡하고 혼탁한 세상 꼬락서니를 더는 보지 않고

일찌감치 영원한 안식의 세계로 영면했으니까요.

결코 슬퍼할 일만은 아닌 듯합니다.

 

생명을 얻은 자, 언젠가는 가야 합니다.

조금 일찍 또는 조금 늦게 가는 것일 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삼도천(三途川)을 건너는 일,

이젠 피하려 하기보다는 준비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겹겹이 둘러 쳐진 삶의 욕망덩어리…, 하나둘 벗어던지고 몸을 가벼이 할 때.

가볍게 더 가볍게 하여 민들레 홀씨로 하늘을 날 때입니다.

 

친구의 부고(訃告)를 접하고서 내 삶의 노정(路程)에 새로운 점 하나 찍습니다.

욕망과 탐욕에 찌들어 살아온 삶, 채우려 하기보다는 내려놓을 준비를 합니다.

억지로 채우려는 마음은 일찌감치 접었지만

삶의 변두리를 채워 넣은 작지만 소중한 것들,

생명이 꺼지기 전에 알뜰히 쓰고, 두 손 탁탁 털고 떠나고자 합니다.

그러고 보면 그리 불행한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젊을 때 챙겨놓은 보장된 밥줄(?)이 있다는 것,

목숨줄 끊어질 때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어쩌면, 혼자만의 삶을 산다는 건

외로움도, 불행도 아닌 지극히 당연한 삶의 노정(路程)인 듯합니다.

 

아직은 형님이 되고픈 생각이 없습니다.

이런 마음조차도 욕심일까요.

욕심이라 해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인생은 60부터라고, 백세인생을 이야기하는 요즘,

고희(古稀)는 한창때가 아닐는지요.

조금은 더 관대하게, 조금은 더 잘 챙기며…,

그래서 삶의 재미를 맘껏 누리고 싶은 마음, 욕심 아닌 기본이 아닐까요.

 

봄비…, 아니, 여름비가 조금씩 굵어집니다.

휴대전화에서 비 피해 없도록 주의를 당부하는 안전메시지가 이어집니다.

그렇지요. 이토록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잘 살아야겠지요.

 

어린이날, 입하지절(立夏之節)에 친구의 부고(訃告)를 접하고서

혼자만의 넋두리를 늘어놓았습니다.

먼저 떠난 친구 형님의 명복을 빌며 좋은 곳에 영면하길 기도합니다.(2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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