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다는 것 / 청송 권규학
가을…, 가을이 깊어갑니다
나뭇잎…,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로 떨어지면
우수수…, 포도(鋪道)*를 뒹구는 낙엽들
배수로 구석구석 진(陣)을 치면
멀지 않은 곳
살모사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는
겨울바람의 흔적을 찾아내고 선
나는 문득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됩니다
지난날, 나는 무슨 생각으로 살아왔을까
20~30대 40~50대, 그리고…,
지난봄, 여름에는 어찌 살았으며
가을인 지금은 또 어떻게 살고 있으며
겨울…, 고희(古稀)*의 코앞에서
나는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그저 외롭다는 것
바람에 떨어져 흩날리는 나뭇잎만큼이나
두 어깨 위에 실린 삶의 무게가 가볍습니다
아니, 무겁다
천근만근을 짊어진 것만큼이나…
외로움은 느끼는 순간 이미 외로움이 아닙니다
울긋불긋 물든 단풍잎에서 잿빛이 보일 때나
창가의 담쟁이에서 마지막 잎새를 떠올릴 때
얼핏설핏 스쳐 지나간 삶의 고독을 느낍니다
혼자라서가 아니다, 외롭다는 건
외롭기에 혼자인 것입니다
가을앓이 앞섶을 헤집는 10월
가을바람 건닷 불어오는 자정 무렵
스쳐 지나는 바람에 마음을 싣습니다
나이 든 사내의 사추기(思秋期)*일지도 모를.(231012)
*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 김광균 (金光均) 시인의 '추일 서정(秋日抒情)'에 나오는 말로 '가치 없음'을 의미하는 은유
* 포도(鋪道) : '포장도로'의 줄임말
* 로댕 : 오귀스트 르네 로댕(Franois Auguste Rene Rodin), 프랑스의 조각가(1840~1917)
* 생각하는 사람 : 턱을 오른팔에 괸 그 오른팔은 왼쪽 다리에 팔꿈치를 얹고 있는 오귀스트 로댕이 만든 석고상(石膏像)
* 고희(古稀) : 나이 70세를 뜻하는 말
* 사추기(思秋期) : '중장년 층이 새로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변화를 겪는 시기'를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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