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비 내리는 날에 / 청송 권규학
끝물여름…, 폭염을 비웃으며
밤새, 사선(斜線)을 긋는 가을비
주룩주룩 추적추적
두 동강 난 허한 가슴에
토라진 계집의 앙칼진 비수로 꽂힌다
뒤란엔 요란한 낙숫물소리
발코니 신발장 앞
비를 피하려는 길고양이 한 마리
인기척에 화들짝 꽁무니를 빼는데
고양이 꼬리에 걸린 길 잃은 마음
머물 곳 없어 처량하여라
새벽녘, 시간은 그침 없이 흐르고
창밖엔 먼동이 트는데
비는 여전히 그칠 생각이 없고
적막한 마음에 고독의 시동을 거는
창문틀…, 흐느끼는 귀뚜라미 소리
귀뚤귀뚤 귀뚜르르
빗소리에 묻어 장단을 맞추고
어디선가 들리는 괭이의 호곡성(號哭聲)
시린 마음의 애간장을 끊누나
아, 이 비 그치면 계절은 가을이려니.(230910)
'자작시·자작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 가을이여! (0) | 2023.09.13 |
---|---|
안식(安息)을 위하여 (0) | 2023.09.13 |
종점과 정류장 (0) | 2023.09.09 |
초가을 전원(田園)에는 (0) | 2023.09.08 |
선택의 기로(岐路) (0) | 2023.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