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들꽃 / 청송 권규학
섣달 초입, 길섶에 이지러진 들꽃을 본다
볼품없이 헤지고 망가진 몰골
지나는 길손들, 본체만체 지나친다
어떤 이는 발로 차고
다른 어떤 이는 비틀어 꺾고
또 다른 어떤 무리는 짓이겨대지만
아무런 말도 비명도 없다
고통의 신음소리조차 내질 않는다
가끔 스치는 바람에 온몸을 일렁일 뿐이다
사람들이 좋아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아픔을 느끼지 못해서 침묵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천형(天刑)으로 받은 운명에 순응할 뿐이다
저기 저 들꽃, 당신의 정원에 심어지고
그 작은 씨앗들이 당신의 손으로 뿌려진
당신의 지인, 친구, 가족이라고 생각해 보라
들꽃은 스스로 사랑받고자 꼬리를 흔들지 않는다
사람이 스스로 아껴주고 챙겨줘야 하고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어 잡아주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너와 나, 누구라도
한 떨기 들꽃의 운명이 될 수 있을 것이기에.(18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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