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인가요 / 청송 권규학
나는 풀꽃입니다
봄 여름 키운 잎과 꽃들
찾아온 벌 나비에게 모두 주고
은은한 향기마저 스치는 바람에 주었습니다
어제 불던 바람은 초록이었습니다
어쩌다 쉽게 만날 수 있는 우연(偶然)
우연(偶然)의 인연(因緣)에 웃고 울었습니다
오늘 부는 바람은 갈빛입니다
반드시 마주쳐야만 할 필연(必然)
우연(遇緣)이 겹쳐 필연(必緣)이 되었습니다
창밖, 바람의 색깔이 잿빛입니다
긴 여름이 떠나는 이별의 빛깔
행여 불구대천 악연(惡緣)과의 조우는 아니겠지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
비열한 심장을 간사한 혀로 감싸고
나약한 머리를 거짓 용기로 포장한 삶
이 계절엔 진솔하고 튼실한 열매로 익어가기를.(18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