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8) / 청송 권규학
비가 내립니다
지금 내리는 이 비는
끝물여름의 단말마를 잠재울
가을비…, 가을비가 분명합니다
둘이서 걷는 가을비 우산 속
연인들의 정겨운 발걸음 속에서
도망치듯 달아나는 여름을
포도(鋪道) 위를 토닥이는 빗줄기에서
젖어드는 가을의 짙은 그림자를 봅니다
이젠 정녕 가을입니다
그 지긋지긋했던 찜통더위
가마솥 용광로의 열기를 헤집고
몽실몽실 가랑비 흩날리는 날
창문턱…, 귀뚜라미 울음소리만 커졌습니다
가을비는 빗자루로도 피한다고 했습니다
수확을 기다리는 농민의 가슴을 할퀼 만큼
그렇게 많이는 내리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저 여름의 끈적끈적한 습기를 씻어내고
가슴을 활짝 펼 수 있을 만큼만
가을 햇살 똬리를 튼 추녀 끝을 적실만큼만
그렇게 적당히만 내렸으면.(23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