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田園)의 행복 / 청송 권규학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계절
어느새 가을이 깊게 내려앉았습니다
나무의 잔잔한 속삭임이 들리는
전원(田園)의 오붓한 벤치에 앉아
한 권의 시집을 벗합니다
10월을 일컬어 시월(詩月)이라 하지요
누구나 한 번쯤 시를 접하고 책을 벗하는 달
시 읽는 계절에 시인만이 시를 읽는다는 게
왠지 나를 슬프게 만듭니다
올해는 유난히 더 슬픈 한 해였습니다
광화문 거리에 울려 퍼진 청부의 함성이
대한민국의 낡은 겉옷을 벗겨내긴 했지만
이 가을, 울부짖는 나무의 울음소리는
설익은 정치와 안보위기에 짓이겨진
대한민국의 슬픈 오늘을 반영하듯
한 잎 두 잎 떨어져 뒹구는 이파리마다
쓸쓸한 잔영이 망울진 듯합니다
울타리를 따라 흙길을 걷다보면
어느 순간 일상은 잊히고
여유와 만족의 추억만이 고스란히 남습니다
낮에는 전원(田園)의 숲길을 걷고
밤엔 낮게 내려앉은 은하수 아래서
마음껏 계절을 만끽하고 싶습니다
문득
나무에 둘러싸인 전원(田園)의 숲에
유난히 가을이 깊게 묻어있음을 봅니다
없는 것을 빼고 모든 것을 갖춘 곳
고독의 그늘이 장막을 친 그곳에
풀이, 꽃이, 나무가 긴 한숨을 뱉어냅니다
그들의 한숨을 통해 대한민국을 시작(詩作)합니다
있는 것을 빼곤 아무것도 없는
전원(田園)의 숲, 이곳에
별이, 시(詩)가 내딛는 발걸음을 잡습니다
한 편의 시를 통해 가슴이 울리고
아직도 시에 반응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전원(田園)이 있고, 오늘이 있어 행복합니다.(17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