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트라 베이스’를 읽고
우연한 기회에 서점에 가서 책장의 한 쪽 구석으로 밀려있던 약간은 오래된 듯한
얇은 책이 있기에 무심코 뽑아 본 이 책 ‘콘트라 베이스...’
책의 겉면을 살펴보니 내가 좋아하는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쓴 작품이고,
또 가격도 싸서(5,500원) 그냥 손에 들고 나온 책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좋아하는 음악가가 생기면 그 사람의 모든 음악을 즐기듯이
작가 또한 한 번이라도 맘에 들거나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면
그 사람이 쓴 작품들 모두를 사랑하게 되는가 보다.
108쪽 분량 밖에 안 되는 얇디얇은 이 책이
내 가슴 속에 뜨거운 감동의 강펀치를 날릴 줄은 정말 예상치 못했다.
첫 장부터가 새로웠다.
줄줄이 쓰인 산문이 아닌, 희곡형태로 한 남자의 독백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의 고뇌를 그린 남성 모노드라마로써
인생의 일반적인 문제를 다루면서도 한 소시민이 그의 작은 활동 공간 내에서의 존재를 위한
투쟁을 다루고 있다.
‘콘트라 베이스...!’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악기가 악단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알기나 할까...?
주인공인 남자는 악단에서 이 콘트라 베이스를 연주하고 있다.
바이올린이나 지휘자처럼 사람들에게 직접 보이지도 않고, 항상 맨 끝줄 맨 구석을 차지하는
이 악기는 마치 우리가 사는 이 나라의 가장 지극히 평범하고도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민들을 얘기 하는 듯 했다.
모든 클래식 음악에 빠지는 경우 없이 콘트라 베이스는 늘 중요한 위치에 서있는 듯 하다.
하지만 막상 우리가 ‘콘트라 베이스 독주회' 란 말을 들어 본 적은 한번도 없지 않는가...?
빠지면 아름다운 음색이 되지 않고, 혼자서는 멀리까지 나아가지도 못하고,
뭔가 앞 뒤가 안 맞는 등..., 콘트라 베이스는 그저 그런 존재일 뿐이다.
다른 말 상대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혀 지루하지 않은 작품이다.
주인공의 대사만으로도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하고, 마치 옆집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흥미로움..., 인생고를 한탄하듯 지루하지도..., 자신을 너무 비하시키지도 않지만
삶의 힘겨움이 묻어나고, 존재의 필요성을 각인시키지도 않지만 누구나 끝에는
‘콘트라 베이스는 반드시 있어야 돼...'하고 느끼게 만드는 문장이 가득 들어있는 얇은 책.
실제로 굉장히 많이 극단에 올라가는 희극이라는 말이 써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공연된 적이 없었나 보다 .
책을 읽을 때 난 꼭 작가의 얘기와 머리말, 차례, 본문 이런 순서로 읽는다.
앞에 쓰인 것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한 쪽 정도의 작가의 글 속에는
앞으로 펼쳐질 모든 내용이 들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드시 챙겨서 읽는 편이다.
책을 덮으면서 반드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바이올린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을 버렸다.
지극히 자신이 서민적이고 평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그런 분들이라면 이 책 ‘콘트라 베이스’의 일독(一讀)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