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 한그릇'을 읽고
가난의 시대를 살았던 어른과 가난을 모른는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 2편을 실은 이 책…,
구리료헤이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 '우동 한 그릇…!'
이 책에는 어려운 시절 용기와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세 모자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린 '우동 이야기'와
임종을 앞둔 어머니의 소망을 위해 먼길을 달려온 '마지막 손님' 등…,
가슴 뭉클한 두 편의 동화작품을 싣고 있다.
특히 '우동 한 그릇'이라는 동화를 보면 돈이 없어서 우동을 한 그릇만 주문하는
세 식구에게 선뜻 3인분을 내주고 싶으면서도 상대가 불편해 할까봐
반인분만 표나지 않게 얹어주는 주인의 사려깊음과
세 식구가 와서도 당당하게 1인분만 주문하는 어머니의 용기가 감동을 준다.
이 이야기를 통해 가난이 자랑일 수 없지만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결코
부끄럽지 않다는 사실과 남을 돕는 방법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그럼 '우동 한 그릇'의 핵심내용을 주인공들의 대화를 빌어 살펴보자.
일본에서는 섣달 그믐날(12월31일)우동이나 메밀을 먹으면,
우동이나 메밀의 면발처럼 오래 살고 다음 해에 복이 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해마다 섣달 그믐날은 우동집으로서는 일년 중 가장 바쁜 날이다.
북해정도 이 날만은 아침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빳다.
평소에는 보통 밤 12시쯤까지도 거리가 번잡했는데
이 날 만큼은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그래서 북해정 주인은 문을 닫으려는데
두 아들을 대동한 엄마가 찾아와서 우동 1인분을 시킨다.
주인은 3명이서 먹기 부족할까봐 반인분을 더 넣는다.
그러고 다음 12월 31일이 되고 늦은 저녁에 또 3식구가 찾와와서 1인분을 시킨다.
주인 아주머니는 3인분을 내주자고 했지만 주인아저씨는 도리어 거북히 여겨
이제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3인분이 아닌…, 작년과 같은 반인분만을 더 준다.
그러고 또 다음 섣달 그믐날…, 또 저녁에 그 3식구가 찾아온다.
그때는 그 식구가 2인분을 시킨다.
'형편이 나아져서 오늘은 예년(작년)보다 배불리 먹을 수 있겠구먼…' 하면서
주인 아저씨는 '3인분을 시키게 되면 좋으련만…'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3인분을 2그릇으로 나누어 준다.
우동을 먹던 중 모자의 대화가 들린다.
'오늘은 너희 둘에게 엄마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구나.'
'고맙다니요…,무슨 말씀이세요…?'
'돌아가신 아빠가 교통사고를 내어 여덟명이나 되는 사람이 부상을 입었잖니?'
(쥰과 형아는 아빠 생각에 빠진다.)
'부상당한 사람들에 대한 보상은 보험금으로 지급했으나 그것으로는 부족했어.
부족한 돈은 매월 5만엔씩 지급하고 있단다. 그 돈은 내년 3월까지 갚게 되어 있단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쯧쯧…!'(주인 아저씨)
'그런데 사실 그돈을 오늘 전부 갚았단다. !'
'그게 정말이에요. 엄마…?'
'정말 잘 되었구려~ 그러게 말이에요.'(주인 부부)
'형아는 신문배달을 열심히 해주었고, 쥰이는 장보기와 저녁준비를 매일 해 준 덕분에
엄마는 안심하고 일할 수 있었던 거란다.'
'엄마 저하고 쥰이도 숨겨왔던 게 있어요.'
'숨겨왔던 거…?'
'학부형들이 모인 수업참관일에 쥰이가 쓴 작문을 낭독하게 되었어요.
쥰이는 선생님이 주신 편지를 엄마에게 보여 드리면 회사를 무리해서라도
쉬실 걸 알았기 때문에 쥰은 그 편지를 저한테도 보여 주지 않고 숨겼어요.
나는 그 사실을 쥰이의 친구에게서 전해 들었어요. 그 얘기를 듣고 제가 참관일에 갔어요.'
'그래…, 그랬었구나…, 그래서…?'
선생님께서 '나는 장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제목으로 전원에게 작문을 쓰게 하셨데요.
쥰이는 '우동 한 그릇'이라는 제목으로 써서 냈대요.
지금부터 그 작문을 읽어 드릴게요.
여보, 지금부터 잘 들어 봐요 ! 쉿…!(주인)
저는 '우동 한 그릇'이라는 제목만 듯고도 북해정 이야기라는 걸 알았어요.
그렇겠지.
사실은 '쥰 녀석이 왜 그런 부끄러운 얘기를 썼지 ?'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어요.
'우동 한 그릇'이란 작문에는 우리 아빠는 운전을 하시다가 차가 눈길에 미그러지면서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셨습니다.
그 사고로 아빠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부상당한 사람들에게 보험금으로 보상을 하였지만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많은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밤늦게 일으하셨는데 어느 날 집에 들어오시면서 코피를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어떤 날은 밤새 끙끙 앓기도 하셨어요.
쥰이야…! 엄마가 밤새 끙끙 거리셨어요.
쥰이야…! 흑흑흑…, 엄마,아프지 마세요.
우리 형은 엄마의 고생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기 위해 조간 석간 신문을 배달하였습니다.
저도 돈을 벌어서 엄마를 돕고 싶었지만 나이가 어려서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 그대신 장보기와,저녁밥을 지어 놓는 일을하였습니다
내가 해 놓은 밥과 반찬이 맛있다고 할 때는 왠지 어깨가 으쓱해지곤 했습니다.
하루하루 숨 가쁘게 일하시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든든히 돕던 형,
우리는 이렇게 셋이서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우리 세 식구는 한푼도 낭비하는 일 없이 절약했습니다.
형이 입던 옷을 제가 물려입고 양말은 새로 사지않고 꿰매서 신었습니다.
우리 엄마가 입고 다니시는 체크 무늬 코트는 벌써 몇 년이나 된 것입니다.
유행도 지나고 오래되어서 색도 바랬고 낡은 옷이지만
우리 엄마는 그래도 겨울마다 그 옷을 입고 다니십니다.
재작년 섣달 그믐날 이었습니다.
그날은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우리 세식구는 처음 가 본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한 우동 집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우동가게 안에서 풍겨 나오는 국물 냄새가
너무나도 구수해서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습니다.
마침 배도 고프다 보니까 우동 가게 앞에서 걸음을 뗄 수가 없었어요.
가게 문을 막 닫으려고 하는데 우리가 들어선 것 같아서 주인에게 무척 미안했습니다.
우동을 한그릇 밖에 안 시켜 먹었는데 양도 푸짐하게 주셨습니다.
우동을 다 먹고 문을 나설 때 주인 아저씨와 아줌마는
우리에게 따뜻하고 큰 목소리로 말해 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두 분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주인 아저씨와 아줌마의 그 목소리를 우리에게
'지지말아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습니다.
내가 어른이 되어 우동 가게주인이 되면 손님들에게
'힘내세요! 행복하세요!'라는 속마음을 담아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구요.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일본 제일의 우동집 주인이 되겠습니다.
쥰이가 작문을 마칠 때 형아는 처음엔 부끄러웠지만
자신있는 쥰이의 마음을 알고 느꼈습니다.
한 그릇의 우동을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더 부끄러운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안 계시지만 그 때 한 그릇의 우동을시켜 주신
어머니의 용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우리 형제는 더욱 합심하여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겠습니다.
끝으로 여러 친구들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쥰이와 사이좋게 지내주기 바랍니다 !
이것으로 인사를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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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야! 그리고 쥰아! 이 엄마는 너희들이 있기 때문에 힘이 나는 거란다.
엄마, 저도 엄마 때문에 힘이나요! 나는 이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존경스러워요.
오,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이렇게 멋진 광경은 처음 봤소! 저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너무 오래 앉아 있었나 봐. 주인에게 미안해서 어쩌나?
이제 그만 가야지?
네…!
늦게까지 앉아 있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밤새도록 앉아 계셔도 좋습니다.
올해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정말 즐거운 그믐날 밤이구려…!
그 뒤로 북해정은 장사가 잘 되어 가게 수리도 새로 하고
테이블과 의자도 새 것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그 식구는 10여년간 나타나지 않았다.
10여년이 조금 지난 오늘 그 식구들이 9시40분쯤에 찾아왔다.
형아 :
우리는 14년 전 섣달 그믐날 밤, 셋이서 1인분의 우동을 주문했던 사람들 입니다.
인정이 넘치는 그 때의 한 그릇의 우동에 용기를 얻어
세 식구가 손을 맞잡고 열심히 살아 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외가가 있는 시가현으로 이사했습니다.
저는 올해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하여 교오토의 대학 병원에서
소아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내년 4월부터 이 곳 삿포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병원에 인사도 하고 아버님의 묘에도 들를 겸 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동생은 우동집 주인이 되지는 않았습니다만 교오토의 은행에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동생과 함께 상의해서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최고로 사치스러운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바로 섣달 그믐날 어머니와 셋이서
삿포로의 북해정을 찾아와 3인분의 우동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사람들 : 이봐요, 주인 아줌마! 지금 뭐하고 있어요!
십여 년간 이 날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섣달 그믐날 10시 예약석이잖아요.
어서 2번 식탁으로 안내해요, 안내를…!
주인 아줌마 : 잘 오셨어요. 자, 이쪽으로…, '여보, 2번 테이블에 우동 3인분이요!'
주인 아저씨 : 아…, 알았어요! 우동 3인분…!
때아닌 환성과 박수가 터져 나온 가게 밖에서는 조금 전까지 흩날리던 눈발도 그치고
갓 내린 눈에 반사된 빛이 창물을 통해 찬란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거짓말 같을 정도로 눈가로 눈물이 맺혀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감동의 눈물이랄까…?
난 스스로는 심장이 엄청이나 강하고…,
또 마음이 냉철하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그게 아니였나보다.
나 역시도 정많고 눈물많은 나약한 한 사람의 인간이었던가 보다.
나이가 들어가는 증거일까…?
싸나이 대장부가 겨우 128쪽에 불과한 짧은 동화 한 편에서 이렇게 눈물까지 흘리다니…!
어찌되었든 가슴 찡한 동화 한 편…, 이 책 '우동 한 그릇'을 여러분에게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