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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 서 평

김승옥(일신서적)의 '서울, 1964년 겨울'

 

김승옥(일신서적)의 '서울, 1964년 겨울'을 읽고

 

 

구청 병사계에서 근무하는 '나'는 선술집에서 대학원생인 '안'과 만나 대화를 나눈다.

새까맣게 구운 참새를 입에 넣고 씹으며 날개를 연상했던지,

날지 못하고 잡혀서 죽는 '파리'에 자신들을 비유한다.

'나'는 이미 삶의 현실에서 좌절을 맛본 후였기 때문에 감각이 다소 둔해진 상태다.

부잣집 아들인 '안' 역시 밤거리에 나온 이유는 '나'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저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미소를 짓는 예쁜 여자가 아니면 명멸하는 네온사인들에 도취해 보기 위해서이다.

자리를 옮기려고 일어섰을 때, 기운 없어 보이는 삼십대 사내가 동행을 간청한다.

중국집에 들어가 음식을 사면서, 자신은 서적 판매원이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으나 오늘 아내가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 시체를 병원에 해부용으로 팔았지만 아무래도 그 돈을 오늘 안으로 다 써 버려야 하겠는데

같이 있어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셋은 음식점을 나온다. 그때 소방차가 지나간다.

셋은 택시를 타고 그 뒤를 따라 불 구경에 나선다.

사내는 불길을 보더니 불 속에서 아내가 타고 있는 듯한 환각에 사로잡힌다.

갑자기 '아내' 라고 소리치며 쓰다 남은 돈을 손수건에 싸서 불 속에 던져 버린다.

'나' '안'은 돌아가려 했지만 사내는 혼자 있기가 무섭다고 애걸한다.

셋은 여관에 들기로 한다. 사내는 같은 방에 들자고 했지만 '안'의 고집으로 각기 다른 방에 투숙한다.

다음 날 아침 사내는 죽어 있었고, '안' '나'는 서둘러 여관을 나온다.

'안'은 사내가 죽을 것이라 짐작했지만 도리가 없었노라고,

그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를 혼자 두는 것이라 생각했었다고 말한다.

'나' '안' "우리는 스물 다섯 살짜리지만 이제 너무 많이 늙었음"에 동의하면서 헤어진다.

'나' '안'과 차창 밖으로 보인다.

예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너무 어렸을 때 읽어서 그런지 특별한 느낌을 못 받았다.

다만 '안'과 주인공 '나'의 대화가 굉장히 생소하면서도 심오하다고 느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대화가 단절되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결코 자신들의 진심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심각하고 진지한 것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나 가치 지향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실과 내적 연관을 갖지 못한 주관적이고 자의식 적인 사소한 대화만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두 사내는 철저한 개인주의로 무장되어 있다.

나이 차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아무리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이렇게 벽을 쌓고 대화하지는 않는다.

그런 나와 내 친구들을 생각하며 이 글의 주인공들과 비교해 볼 때

이 시대는 지금보다 더 연대성이 상실되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 두 사람에 비해서 삼십대의 외판원 사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얘기하면서

자신의 고뇌와 비애를 공유할 것을 간청한다.

이를테면, 고통의 분배를 통한 인간적 연대 의식을 상대방에게 솔직히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힌 '나' '안'은 이 사내를 매우 부담스러워 한다.

둘은 외판원 사내의 동행 요청에 마지못해 하고 내심으로 빨리 떠나고 싶어한다.

정말 '나' '안'의 행동은 너무 한 거 같다.

인간적 유대라는 걸 찾아볼 수 없는 철저한 이기주의.... 나 역시 이기적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까지 불쌍한 사람의 슬픔을 모른 척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안씨의 경우 외판원 사내가 자살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이를 말리지 않은 사실에서

인간적 유대가 없는 소외의 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죽음에 임하여서도 결국 합치되지 못하는 그들을 보면서 현대인의 고독하고 파편적인 삶을 읽을 수 있다.

익명화되어 있는 주인공들과 의미 없는 이야기들,

자꾸 끊기는 대화 속에서 자기 중심적인 태도를 느낄 수 있다.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책과 비슷한 일들이 우리 일상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건 사실이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생각과 고민에 잠기게 된 것은 사실이나,

나의 머릿속에 담긴 것들을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냥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젖어 내 자신을 반성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