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작시·자작글

능소화는 피었는데

 

 

능소화는 피었는데 / 청송 권규학

 

 

장독대 위의 주황빛 고깔

올해도 어김없이 능소화가 피었습니다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능소화는 토라진 계집애 성깔을 닮았다고

 

아름다운 자태에 취해

코끝을 들이밀고 냄새를 맡을라치면

톡- 쏘는 향기,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진해가는 길 초입에 작은 절 하나 있습니다

바다와 소통하는 향기를 간직한 능엄사

담장 위에 흐드러진 능소화를 보면

언제나 어머님과 누이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달덩이처럼 화사한 꽃잎은

옅은 화장을 한 누이의 얼굴을 닮았습니다

장독대를 간지럽히는 꽃술은

어머님의 가지런한 손길을 닮았습니다

 

불현듯 보고 싶어집니다

어머님의 인자한 얼굴

누이의 다정한 미소가…

금방이라도 들려올 듯합니다

애야! 하고 부르시는 어머님의 목소리

오빠야! 하고 부르는 누이의 음성이…

 

문득 뒤를 돌아봅니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습니다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난 이름입니다

왜 그럴까요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이름들

능소화 꽃잎에 차곡차곡 새겨봅니다.(130616)

 

 

 

 

'자작시·자작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마 소식  (0) 2013.06.19
포옹, 그 뜨거운 이름  (0) 2013.06.17
멀리 있어도 가까운 사람  (0) 2013.06.13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3)  (0) 2013.06.12
여름산에서  (0) 2013.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