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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자작글

청도천(淸道川) 일몰(日沒)

 

 

 

청도천(淸道川) 일몰(日沒) / 청송 권규학

 

 

1.

사람은 늙어가는 게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라 했듯이

노을은 지는 게 아니라

조용히 저물어 물드는 것입니다

 

청도천 개울에서 만난

황룡의 여의주를 머금어 타는 저녁놀
두 팔 벌려 정겹게 가슴에 안습니다

 

노을이 저녁 하늘의 주인(主人)이라면

인간인 나는 노을촌(村)에 깃든 주민(住民)

오늘 하루도 사랑 안에서 행복합니다

주인의 품속에서 하루를 보낸 나는.(221004)

 

2.

용광로를 품은 황룡의 여의주

서산마루 위로 고꾸라지는 시간

청도천 둔치, 갈대밭에 숨어 앉아

붉은 해를 안고 사라지는

토평* 하늘의 일몰(日沒)을 훔쳐본다

 

서녘 하늘을 검붉게 태우며

이지러지는 해를 볼 때마다

가없는 아쉬움을 느끼는 건

지난 세월에 대한 미련 때문일까

더 잘하지 못한 후회와 자책일까

 

태양을 집어삼킨 노을은

늘 잠잠을 가장한 듯해도

어떨 땐

황룡의 승천인 양 황홀하리만치 웅장하고

석양(夕陽)의 옷차림은 미치도록 화려하다

 

꼭꼭 숨은 자연의 속살을 보고 싶은 날

도시(都市)와 시골이 만나 촌락을 이룬

3청(三淸)의 고장, 청도(淸道)에 가면

지척에 파랑새를 두고도 눈치채지 못한

무지(無知)하다 못해 우둔한 나를 만난다

 

찰랑이는 청도천 수면에

그리움이 스며 번진 별빛이 내려앉

휘영청, 달빛의 그림자가 깔리

천 년의 속살을 숨김없이 토해낸

청도천(淸道川) 윤슬*의 밤이 슬프다.(221128)

 

* 토평 : 청도군 화양읍 소재, '토평리'의 지명.

* 윤슬 :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