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안개처럼 / 청송 권규학
비 그친 오후
안개 자욱한 산을 오른다
계곡의 나무숲 사이
시커먼 입을 벌린 채
내려다보는 작은 동굴 하나
누구의 발걸음도 허락하지 않은 듯
물기 머금은 이끼가 촉촉하다
계곡의 턱을 받친 저수지
물 위에 깔린 하얀 안개꽃이
주변을 환상으로 감싸고
속살 비친 잠옷의 여인처럼
보일 듯 말 듯
언제 봐도 신비롭고 자극적이다
물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흐른다
돌부리가 있으면 피하고
바위를 만나면 휘돌아 흐르지만
언제나 부드럽고 약한 것은 아니다
모든 걸 쓰다듬고 어루만져주지만
화가 나면 노도(怒濤)가 되어
파도(波濤)로, 풍랑(風浪)으로
세상의 모든 걸 뒤집어엎는다
물이란 것 역시 신비스럽다
고인 물은 힘이 없지만
흐르는 물은 힘이 차고 넘친다
잘게 갈라지면 이슬방울이 되고
많이 모이면 개천이 되고
더 많으면 강이 되고 바다가 되는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게 물이다
너도 나도, 우리 모두가 다 그렇다
때론 안개처럼, 때론 물처럼 그렇게.(20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