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 / 청송 권규학
은퇴의 황량한 들판 위에
코로나의 혹한(酷寒)이 휘몰아친다
가뜩이나 살얼음판 같은 삶
죽는다 죽는다 하는 통에
죽어라 죽어라 하며 짓밟는 꼴이다
오래된 술병에
새 술 한 방울 떨어진다고 한들
그 맛을 변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지만
가만히 앉아 죽을 순 없는 일
삶의 호불호(好不好)를 가늠해 본다
백정의 칼이 극에 이르면
짐승에게 고통 없는 죽음을 안기고
농군의 땀이 극에 이르면
황무지에서도 새싹이 돋아나며
촌부의 비파소리가 극에 이르면
듣는 이에게 천상의 기쁨을 느끼게 할지니
문인(文人)이랍시고
시인(詩人)이랍시고
글 같지 않은 글을 쓰고
시 같지 않은 시를 써 온 세월
비록 졸시(拙詩)라고 할지라도
순간순간 열정을 다하노라면
읽는 이에게 위안을 줄 수도 있을 테니.(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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