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남자(2) / 청송 권규학
어둑어둑, 땅거미 깔리는 저녁 무렵
깊어진 계절만큼 수북이 쌓인 단풍잎이
산책로의 풍미를 더해주는
전원(田園)의 뜨락에 발걸음 옮깁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 지나고
짙은 어둠이 좁은 창틈을 지날 때까지
단풍잎은 쉼 없이 글을 썼습니다
희(喜) ‧ 로(怒) ‧ 애(哀) ‧ 락(樂)
삶의 단락마다 새겨 넣은 숱한 사연들
단풍이 낙엽으로 포도(鋪道)를 뒹굴 때
눈여겨보지 않았던 진실들이
하나둘씩 시가 되고 그림이 되었습니다
푸른 잎이 써 내린 글의 씨앗은
아름다운 글씨가 되었고
글씨가 자라나서 글꽃으로 피고
글꽃이 어우러진 글숲에는
한 채의 시의 집이 지어지고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짧기에 더 아쉽고 그리워지는 계절
이제 10월이 가고 겨울이 왔습니다
가을은 그렇게 10월과 동행했습니다
동짓달엔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더 중후하고 멋진 겨울남자로.(181117)
* 개와 늑대의 시간
프랑스에서 유래된 말로 '해 질 무렵 어스름한 시간에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뜻의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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