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酒)2 / 청송 권규학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친구와 술 한 잔 나눴습니다
첫 한두 잔은 내가 술을 마시지만
몇 순배 돌고 나면 술이 술을 마시고
조금 더 지나면 술이 나를 마십니다
술이란 참으로 좋은 듯 나쁜 녀석입니다
적당하게만 마신다면
추위를 가시게 하고 친구를 사귀게 하며
모르는 사람을 알게 하고
알고 있는 사람과의 정을 돈독하게 하지만
조금 과하다 싶으면 뒤끝이 안 좋고
손을 떨게 만드는 흠이 있으며
주의력과 경계심을 잃게 합니다
술은 품질이나 그 종류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쌀밥 먹고 싼 것이나 밀가루 먹고 싼 것이나
배설물의 색깔은 다 똑같듯이
술이란 그저 술의 역할에 충실할 뿐입니다
술은 조시구(釣詩鉤)*요, 소시구(掃詩狗)*라지요
오늘도 한 잔 술에 해설픈* 풍월을 읊습니다
인간은 술로 말미암아
충분히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누리지만
또 그 술로 인해 절망과 통곡의 눈물을 쏟기도 합니다
굶주린 늑대에게 먹이를 던져주지 않으면
결국엔 그 늑대가 사람을 물 수도 있듯이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술 마시는 걸 억지로 막을 필요는 없습니다
새벽이 멀다고 부정하면 아침이 더 빨리 오듯이
세상만사 술과 함께 유유자적할 수밖에.(180611)
* 조시구(釣詩鉤) : 시를 낚는 낚시
* 소시구(掃詩狗) : 온갖 시름을 씻어버리는 비
* 해설픈 : 햇살이 설핏한 상태, '(해가)져서 그 빛이 약하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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