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M. 바스콘셀로스(김경미 역 : 육문사)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고
누구나 가슴 속 깊이 감명깊게 읽은 책 한권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무겁지 않으면서 가슴속에 서서히 스며들어 우리에게 잊혀지지 않는 그런 책...!
'어린왕자',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갈매기의 꿈' 등이 그러한 종류의 책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에게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이 뭐냐'고 물어보았을 때
'어린왕자'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을 실제로 많이 보았다.
그러한 책들이 우리에게 소중한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는
그러한 책보다 우리를 더 감동시키는 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아직 깨끗함과 순수가 남아 있던
그 시절에 접한 책이라서 더욱 그러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내게도 그렇게 서서히 가슴속에 다가와 이제는 내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한 권의 책이 있다.
J.M.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의 숙제를 도와주던 2001년도 하반기였지 싶다.
학교에서 독후감을 써오란다고 하면서 아들 녀석이 어찌나 징징거리며 조르던지...,
솔직히 말해서 아들로부터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듣고 뭐 이런 아이들 동화책같은 것을 어떻게 읽고,
또 어떻게 독후감을 쓸 것인가...? 하고 무척 난감해 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들 녀석은 이 책의 독후감을 써가지고 담임선생님께 제출하고 읽은 소감을 이야기하면
선생님이 그 소감을 듣고 책을 공들여 읽었다고 생각한 아이에게는 무궁화 도장 3개, 보통은 2개,
건성으로 읽었다고 생각한 아이에게는 1개를 찍어 주신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제각각 받은 도장을 월마다 헤아려 가장 많은 무궁화 도장을 받은 아이를 독서왕으로 뽑아
새 책 한권씩을 선물로 준다는 것이었다.
한번도 독서왕을 타본 적이 없는 녀석의 사기를 죽이기도 그래서 별반 흥미없이 대충 읽어내려간 것이
오히려 이 책의 주인공에게 매료되고 말았던 것이다.
당시 아들의 담임선생님은 초등학교로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20대 후반의 처녀였는데
그 선생님의 독서지도 방법은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멋진 발상이라 할 수 있었다.
책읽기를 꺼리는 어린이들에게 독서붐을 조성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그 때부터 아들녀석이 책을 읽는 것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책방에 가서 두 권의 책을 빌렸다.(그림동화식의 아들 책 한 권과 내 꺼 하나)
내가 읽을 책의 겉표지에는 소년이 나무에 기대어 있고, 속장은 누렇게 바랜 조금은 오래된 듯한 책
-아마 1999년 4월경에 출판되었지 싶다-의 첫 장을 넘겼다.
(물론 아들 녀석 역시 동화형식의 이 책을 함께 읽는다는 조건 하에)
책 속 '제제'의 장난기에 마냥 낄낄거리다가
그의 아버지, 어머니 이야기와 가정의 모습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나 역시 개구쟁이여서 일까 ?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이미 책 속 '제제'가 되어있었다.
그러다 '마누엘 아저씨'를 만나 작은 행복에 젖어있는 '제제'를 대했을 때는 마냥 동심으로 달려가서
내게도 새로운 친구가 생긴 것 마냥 흐뭇했었다.
아들 녀석 역시 뭔가는 모르지만 읽을 때마다 키득키득 거리는 폼이 뭔가 재미를 느끼는 듯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제제'의 상담자이자 친구인 '슈르르까'...!
아들 녀석은 한동안 집 마당에 있는 사철나무를 '슈르르까'라고 부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제제'처럼 풀어놓곤 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몇 가지 내용을 요약하고 아들과 이야기를 했었다.
독후감쓰기를 도와주고 한편의 소감문을 완성했다.
아들의 숙제가 왠지 한편의 논문을 완성하기보다 더욱 어렵게 느껴짐은 왜일까...?
아이의 창작력을 무시하고 아버지인 내가 모두 쓸 수도 없는거고..., 그렇다고 그냥 맡기기도 뭣해서
먼저 아이의 작문을 본 후 고쳐 주기로 했다.
여석은 의외로 자신이 느낀 바를 제법이나 조목조목 적어 왔다.
아이를 키우면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흐믓함이었다.
아...! 이런 것이 아이를 키우는 보람이겠구나...!
나름대로 보람과 함께 자랑스러움을 느끼고 이것저것 글을 다듬고 고쳐서 보냈다.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물었다.
'선생님이 뭐라고 하시든...?'
'이 책을 읽고 무얼 느꼈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니...?'
'소년의 나무에 대한 사랑이요'라고 대답했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뭐라 하시던...?'
'네가 좀 더 커서 다시 한 번 더 이 책을 읽을 때는 아마 지금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들꺼다.
나중에 꼭 한번 다시 읽어보렴' 하시며 무궁화 도장 2개를 찍어주셨단다.
당시 무궁화 도장 3개를 받지 못해 샐쭉해진 아이의 표정과 아빠가 뭘 잘못 지도해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한 듯한
미안함이 겹쳐서 아이에게 사슴벌레 한 쌍을 선물로 사 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 아이의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듯도 싶다.
나는 아이를 지도하기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마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펴들고 '제제'가 되어본다.
이제는 다섯 번도 넘게 읽어 내용을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상한 건
'마누엘 아저씨'가 사고로 죽는 대목에선 어김없이 눈시울을 적신다는 것이다.
수년의 세월이 흘러 이 소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에 대한 독후감을 쓸 기회가 생겨
그 독후감을 다 쓴 다음 다시 또 아들 녀석과의 그 기억을 떠올려보며 이 글을 남긴다.
언제나 집에 갈 때쯤이면 집 마당의 화단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사철나무를 보며,
아이가 주절거렸던 이해되지 않는 말들을 되새겨본다.
'슈르르까'...!
그 나무는 내 아이가 학교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뛰어들 때까지 아이의 맘속에서 싱싱한 잎을 드리우고
언제나 은은한 오렌지 향기를 퍼뜨리며 살아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