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정원’을 읽고
‘관용(톨레랑스)’의 본고장 프랑스의 중편 소설 『처절한 정원(Effoyables Jardin)』은
우리말의 ‘관용’에서 읽어내기 힘든 ‘자기 낮추기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전투와 처형이 횡행하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의 프랑스가 무대이지만, 100쪽을 겨우 넘기는
이 짤막한 소설은 마치 한 편의 소박한 우화처럼 읽는 재미를 준다.
주인공은 기차역의 변압기를 폭파시키라는 지령을 받은 형제 레지스탕스.
간단히 임무를 해치우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독일군에게 붙잡히고 만다.
그러나 테러범으로 체포된 것이 아니었다.
‘테러범이 잡히지 않으면 다른 인질을 잡아 사흘 뒤 처형할 수 있다’는 페탱 괴뢰정부의 법령에 따라 인질로 잡힌 것.
‘얼마나 우스운 일이냐 ? 우리 자신이 범인이니 다른 사람이 자수하리라고 기대할 수도 없는 거잖아 !’
다른 인질 둘을 합쳐 구덩이에 갇힌 네 사람을 얼빠진 독일군 보초가 감시한다.
그의 어리숙한 짓거리가 계속되자 네 인질은 죽음의 공포마저 잊고 깔깔대지만, 사실 보초는 바보가 아니었다.
입대 전 어릿광대였다는 ‘특기’를 이용해 가엾은 넷을 위로했던 것.
체념의 시간이 가까워지는 순간, 네 사람은 갑자기 풀려난다.
누군가 자신이 테러범이라고 자수했던 것이다.
도대체 누구일까, 자신의 목숨을 바쳐 네 사람을 구한 사람은 ?
풀려난 두 ‘진범’ 중 형은 평생 어릿광대로 살아간다.
그처럼 자기를 낮춘 삶은 동생에게도 다름이 없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어릿광대 형의 아들인 화자(話者)의 가족사가 공개되면서 독자의 궁금증이 풀리게 된다.
최후의 대반전은 추리소설을 연상케 한다.
놀랄 일은 아니다.
작가 깽이 이 작품에 앞서 발표한 작품들은 모두 탐정소설이었기 때문.
이 작품은 출간 직후 독일어, 영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됐고, 전 유럽의 베스트셀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