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고
가을이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다.
아침, 저녁으론 완연한 초겨울의 기온이 속살을 후빈다.
‘아..., 벌써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려나...!’
요즘들어 아무런 하는 일없이 세월만 축내는 듯한 느낌이 가끔씩 뇌리를 스치고,
뭔지모를 진한 외로움이 묻어나오는 등..., 매년하는 ‘가을앓이’지만
예년과는 달리 올해는 왠지 조금은 심한 듯 하다.
아마 이것도 나이들어가는 증상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가는 세월을 그냥 보내기가 아쉬웠던지..., 책이라도 한 권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사를 한 후 아직까지도 다 풀지 않고 구석진 창고의 한 편에 쌓아둔 책더미를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한 눈에 들어온 이 책...,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집어 들었다.
왠지 이 책은 언젠가 읽은 것 같은..., 조금은 친근감이 물씬 풍긴다.
-어떤 기록이나 독후감을 써놓지 않아서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포루투칼계 아버지와 인디안계 어머니 사이에서 3남3여 중 다섯째로 태어난
브라질 태생의 ‘J.M. 바스콘셀로스’이다.
그는 집안의 궁핍으로 수많은 궁핍과 역경을 겪었으나 열성적인 노력으로 포루투칼 장학여행을 가게되었고,
그 체험을 글로 펴낸 것을 계기로 훗날 그 스스로가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사실주의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힌다.
주요작품으로는 1942년 처녀작 ‘성난 바나나’를 발표한 이후, ‘하얀 진흙’, ‘머나먼 대지’, ‘썰물’, ‘붉은 앵무새’,
‘불빛’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특히 1962년에 발표한 ‘장미’와 ‘나의 카누’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여기에 탄력을 받은 그는 이어서 발표한 바로 이 책...,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에서 원숙한 소제 구성과
절묘한 문장터치, 그리고 철저한 상황묘사 및 인간과 자연의 합일화를 이루는데 성공함으로써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우뚝 서게 되었다.
이 작품에는 겨우 5살 밖에 되지 않은..., 정말 우리나라의 어린아이와 하나도 다를 바 없이 장난 끼가 무척이나 심한...,
그렇지만 마음만은 너무도 순수한 그런..., ‘제제’라는 이름을 가진 어린 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몇 살 많지 않은 형과 누나가 둘씩이나 있고, 아버지는 일찍 실직을 해서 어머니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을 나가야 하는 전형적으로 궁핍한 가정이었다.
비록 어린아이였지만 워낙 장난이 심하였기 때문에 ‘제제’는 자신의 속에는 악마가 살고 있다고까지 생각을 한다.
그러다 보니 집안에서 ‘제제’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어머니와 큰 누나 뿐이었다.
아버지의 실직으로 이사를 간 새로운 집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이 나무가 ‘제제’에게 말을 걸어온다.
‘제제’는 이 나무를 ‘슈르르까’라고 부르며 그 나무와 절친하게 지낸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어떤 어려움(?)이 닥칠 땐 언제나 ‘슈르르까 나무’에게 찾아가서 상담을 했다.
아무도 어린 ‘제제’의 말을 들어 주는 사람이 없는 세상...,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는 오직...,
이 ‘슈르르까’만이 유일한 친구이자 상담자였다.
한참 어리광을 부리며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라야 할 나이에 이웃과 가족으로부터 멸시를 받고,
어떤 때는 심한 매를 맞기도 하고, 또 찌들대로 찌든 가정형편으로 인해 크리스마스 선물조차도 받지 못하는 등,
잘사는 이웃과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비교해 볼 때, 비록 어린 ‘제제’일지라도 불공평한 빈부의 격차를 혐오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환멸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제제’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자연과 친구가 되어 대화도 나누고,
슬픈 일이 있을 때는 서로 위로하고, 또 위로를 받으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간다.
아버지가 다시 일자리를 얻게되자 ‘제제’ 또한 마음속에서 사랑하는 ‘라임 오렌지 나무’를 잘라내어 버린다.
하지만 ‘제제’는 어른이 되어도 어린 날 온갖 정성과 정을 쏟아부어 준 사람들의 고마운 마음을
마음 속 깊이 영원히 묻게 된다.
감히 어른이 다다를 수 없는 완전 순수의 세계...!
‘J.M. 바스콘셀로스’는 이 작품에서 ‘제제’라는 어린아이를 통해 ‘진정한 사랑’과 ‘인간의 조건’,
‘인간과 자연의 교류’,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시기질투와 핍박’, 그리고 ‘진정한 우정’ 등을 강조하고 있다.
‘미운 일곱 살’이라는 속담이 있다.
그렇게 개구쟁이이고 말썽꾸러기였던 어린 소년이지만 끝까지 의지를 굽히지 않고 묵묵히 자기 길을 걸음으로써
차츰 주위의 따뜻한 온정을 느끼고, 삶의 진정한 목적도 깨닫게 되는...,
이 작품의 주인공인 어린 ‘제제’로부터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구든 이 책 속에 나오는 ‘제제’와 대화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삭막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세상과는 전혀 상반된 순수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
몇 일 전이었던가..!
평소보다는 조금은 이른 퇴근 시간이었으니까 오후 6시가 조금 못되었지 싶다.
사무실을 빠져나와 골목을 들어서려는데 골목 입구에서 어떤 조그만 남자아이가 비누방울을 후후 불고 있었다.
때마침 노을이 지고 있어서 비누방울이 노을빛에 반사되어 노란 빛을 띠면서 석양의 하늘에 바쁘게 나돌아 다녔다.
아이를 좋아하는 난 그 모습을 보고, ‘예쁘다...!’를 연발하며 아이에게 흐뭇한 눈길을 주는데 그 아이 왈(曰),
‘우와~~ 짱...! 디따 많이 나간다~~!’
이게 무슨 뜻일까...?
어린 아이의 입에서 터져 나온 그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아듣지 못하는 걸 보면
나 역시도 이미 쉰 세대(?)의 나이 먹은 사람임을 속일 수 없을 것 같다.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남긴 채 그 아이로부터 멀어져 가는 내 마음에 뭔가 쓸쓸함이 남았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미처 다 읽지 못한 이 책...,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펼쳤다.
첫 장을 넘길 때부터 쭈욱 느꼈던 것이지만 제목으로 봐서는 꼭 어린아이들이나 읽을 동화책 같은 느낌이드는
제법이나 두꺼운 분량의 책이었지만 일단 읽게되면 그 책의 줄거리에 매료되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된다.
나 역시도 어린 ‘제제’의 너무도 맑은 ‘순수성’에 끌려 제법이나 긴 이 책을 이틀만에 독파해 내었으니 말이다.
책을 잡은 지 1시간 남짓 지났을까...?
‘딩동딩동...!’하고 전화벨이 울린다.
간단히 소주 한 잔 하자는..., 유난히 까랑한 후배녀석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넘친다.
얼른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계의 작은 바늘이 8시를 조금 지나고 있었다.
후배의 성의를 무시할 수도 없고 해서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어느새 칠흑처럼 깜깜해진 하늘을 보며 놀이터 옆을 지나가는데,
한 아이의 울음소리와 소리지르는 아줌마의 앙칼진 목소리가 귓청을 때린다.
듣자하니..., 아이가 늦게까지 놀다가 신발을 잃고 돌아온 것 같다.
엄마는 우는 아이를 쥐어박고 또 쥐어박고..., 그것도 모자라는지
혼자서 화를 풀려고 소리소리를 지르는 폼이었다.
그 순간, 문득 ‘제제’가 떠올랐다.
퇴근길에 내가 보았던 비누방울의 그 아이...!
‘짱이다’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 그 아이는 ‘쎄실리아 빠임 선생님’이 보는 ‘제제’처럼
그 아이도 순수하고 착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짱’이란 말을 내뱉자 내가 가졌던 그 아이에 대한 순수함이 무너졌다.
마치 겉모습은 5살 같은데..., 입만 열면 도대체 알아듣지도 못할 이상한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갈보자식 !(이 말의 뜻은 나도 모른다)’을 내뱉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유행가를 불러대는
‘제제’와 같은 느낌을 주었던 그 아이...!
가슴 속에 ‘작은 새’가 있어. ‘슈르르까’..., 내일 모레 우리 ‘벅 존스’ 보러가자.
놀이터에서 울었던 그 아이도 나름대로의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며
신발을 어디 둔 지도 잊은 채 놀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다리고 있는 건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 속 엄마의 꾸지람.
과연 그 엄마는 알까..., 아이가 얼마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지를...?
‘제제’도 악의는 없었을 거다.-비록 악마가 시킨 것이지만-
무차별한 가족들의 학대와 매질..., 철이 들 수밖에 없었던 ‘제제’의 환경이 어린 시절의 나에게도 있었다.
어려운 말을 배우면 곧잘 따라하고, 동생을 ‘왕’이라 칭해주고, 작은 나무를 붙들고 이야기하는 것 등등...!
‘세상을 알아가는 것’을 보고 ‘철이 든다’ 고 하는 것인가...?
5살의 나이에 맞는..., 5살의 아이가 가져야 하는 순수함을 ‘철이 없는 것’이라고 해야하는 건가...?
그건 오히려 ‘철이 있는 것’이 아닐까...?
‘제제’의 라임오렌지나무 ‘밍기뉴’의 역할이 크다.
왜냐하면 요즈음 교육의 주안점이라는 ‘창의력’을 키워주었으니까...!^^*~
순수하고..., 또 순수하게 자라야 하는 ‘제제’와 같은 아이들이 순수하지 못하게 크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
너무도 안타까웠던..., 그래서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다.
나 역시도 지난 어린 시절을 그렇게 살지 못했었기에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의 시리즈에 ‘제제’가 성장하는 모습이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그 책은 보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깜찍하고 귀여운 ‘제제’가 더 힘들어하는 걸 보고 싶지 않으니까.
지금 당장 내 앞에 ‘제제’와 같은 아이가 있다면..., ‘뽀르뚜가 아저씨’처럼
그렇게 아주 잘해 줄 의향도 있는데 말이다.
후배와 술잔을 주고받는 중에도 머리 속에는 조금 전에 본 그 아이와 아이 어머니의 모습이 지워지질 않았다.
아니, 그 모습에서 떠오른 ‘제제’의 모습을 지울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후배와의 주석(酒席) 기분은 흥미롭지 못했지만 이 책,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통해
새롭게 동심의 세계를 느껴봄으로써 삶에 찌든 정서에 한 가닥 활력을 얻을 수 있었음은 큰 수확이라 하겠다.
모쪼록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들’..., 아니,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또 어린 시절의 동심(童心)에 파묻히고 싶은
모든 사람들이 읽어보기를 적극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