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에 투영된 전쟁관'
Ⅰ. 머 리 말
우주공간에 지구가 처음 생성된 이래,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생명의 진화과정이 반복되어 왔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지능을 가진 생명체는 곧 인간이었다.
또한 지구의 생성과 함께 인간이 최초의 생존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수많은 형태의 이유없는 싸움이
발생했었고, 오늘날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이는 생존과 종족번식이란 가장 원초적인 본능의 충족을 도모하기 위함이었으며,
때론 주거지역인 영토를 확장하거나 확보된 영토를 지키기 위해,
때론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편안한 생활을 누려가기 위한 노비의 획득을 위해,
또는 제각기 서로 다른 이해와 갈등, 그리고 복잡한 형태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는 크고 작은 분쟁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는 과정에서 전쟁이 주는 숱한 고난과 상처, 그리고 갖가지 애환들을 노래로 표현하게 되었고,
그 노래들이 알게 모르게 몇 가지의 형식을 갖추게되어 전쟁문학이라는 이름이 생겨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과연 전쟁문학이란 무엇인가 ?
또한 언제부터 전쟁문학이란 용어가 사용되어 졌는가 ?
거기에 대한 명확한 답이 아직까지 정립되어 있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여러 사람들의 주장을 종합해 볼 때,
전쟁문학이란 "전쟁을 소재로한 문학이다." 혹은 "전쟁을 주제로한 문학이다."라고
막연하게 정의되어 지고 있다.
오늘날 [전쟁]이라고 하는 개념이 문학작품상에 나타난 것은,
[문학]이라는 그 존재자체의 역사와 시기적으로 동일한 바,
그 시초는 세계문학사상 가장 오래된 작품인 호머(Homer), Illiad와 Odyssey이다.
전쟁과 문학과의 관계는 오래되었으며,
위대한 작가의 작품에서 전쟁에 대한 언급이 벌써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전쟁문학이란 용어가 쓰인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엄밀히 말하자면 전쟁문학이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 주로 미국과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애당초 전쟁문학(Kriegsdichtung)이라든가, 세계대전 문학(Weltkriedgsdichtung) 이라는 용어는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을 받은 독일인에 의해 불려지게 되었다.
이렇듯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와서야 본격적인 전쟁문학이 나오게 되었는데,
그것은 고대의 수많은 전쟁이 하나의 자연현상처럼 일어난 반면에,
1차 대전은 역사상 가장 극심한 공포와 비참함, 어리석음과 허무함 등,
전 인류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많은 전쟁문학 작품이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인간들은 커다란 전쟁에 휩싸일 때마다 정신적인 위기와 가치관의 혼란을 겪어 왔으며
그럴 때마다 세계경제구조는 수 십년, 아니 수 백년 이상의 퇴보를 거듭해 왔을 뿐만아니라
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한 인간성의 상실과 함께 폐허의 잿더미 속에서
고통과 갈등으로 몸부림쳐 왔다.
또한 승자와 패자, 그리고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현격한 계급구조를 발생케 했고,
이러한 양상은 곧바로 세계정세의 판도를 크게 변화하게 하는 동기를 부여하게 되었다.
특히 우리는 불과 반세기 전에 뼈아픈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을 경험했으며,
처참한 전쟁을 통하여 우리 동포들은 두 번 다시 겪을 수 없는 피맺힌 체험을 했다.
따라서 본 고에서는 우리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학자들의 서로 다른 견해를 비교/검토하여
나름대로의 종합적인 전쟁문학의 개념과 정의를 모색해 보고,
6.25 이후의 한국 시에 나타난 전쟁관과 당시 이 땅의 시인들은 무엇을 체험했고,
그 체험을 어떻게 노래했으며,
또한 어떤 의식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Ⅱ. 전쟁문학의 개념
가. 광의의 전쟁문학
전쟁의 내용을 기술하는 문학작품을 전쟁문학이라고 한다.
내용이라 함은, 소재로서의 내용과 주제로서의 내용을 함께 표현하는 것으로
고대나 중세의 영웅 서사시, 무훈시, 군담소설, 군기물 등을 포함한다.
대개 어느 나라의 경우에든지 지리적 위치와 역사적 상황에 따르는 국가 간의 분쟁에서
국가통일을 위해 영웅을 노래하고, 전기적 무용담을 읽고,
나아가서는 남아의 기상을 나타내는 전쟁시와 영웅을 중심으로
한 민족단합의 군담소설 등이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영웅서사시나 무용담 등은 민족적 영웅의 개인적 무용을 중심으로 하여,
신화/전설과의 긴밀한 관련 밑에 전기적 무용담으로 그치고, 군담소설/군기물 등은
전통적 사회의 영향 밑에 한낱 전기물로써의 특징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광의의 전쟁문학이란 제1차세계대전 이전의 작품들로,
전쟁을 기술하되 모두가 제재로서의, 기교로서의 전개와 引用에 그치는 정도로
체계적인 작품의 구조가 마비된 상태라 할 수 있다.
나. 협의의 전쟁문학
근대 이후 기계문명의 위력과 거대한 전쟁의 파괴력 앞에 직면한 문학은 반전적인 감정과
인간애의 사상을 반영하게 되었으며, 국가에 대한 개인의식 및 사회주의사상 성장 등의 원인으로
반전/배전운동이 일어난 이후엔 국가적 요소보다는 인간적 요소에 중점을 둔
협의의 본격적인 전쟁문학이 성행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전쟁문학 작품들은 작중인물을 통해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대하는
인간의 운명과 갈등, 야기되는 사상과 전쟁의 증오심 속에서 구겨진 인생을 펴고 아름다움을 발견,
휴머니즘으로 승화시킨다.
이러한 협의의 전쟁문학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가. 사실성(Reality)
나. 주제(Thema) : 인간과 전쟁
다. 소재, 제재(Materials)
이상과 같이 본격적인 전쟁문학이라 할 수 있는 협의의 전쟁문학은
리얼리틱(Realitic)한 사실성을 근본으로 하여 주제, 소재, 제재 등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문학을 뜻한다.
Ⅲ. 작품에 나타난 작가의 전쟁관
가. 긍정적 입장
이 계열의 작품을 살펴보면, 고대나 중세에서는 영웅숭배나 영웅예찬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었고,
근대이후에는 민족의 자존과 자유평화를 위해서 전쟁참여를 긍정하는 입장이다.
전쟁자체는 싫어하지만 임무가 주어지면 완수한다는 자세로 그 전쟁을 정당한 것으로 보고
전쟁에 참여하는 것으로써, 이 때의 승리는 임무의 충실에서 오는 것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고대의 전쟁작품(호머 서사시, 중세 유럽 르네상스)들은 전략전술의 놀라움,
영웅의 내면생활 등을 묘사하여 예찬하고 있으나, 오늘날의 긍정적인 전쟁작품은 침략적인 전쟁에 반대해서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수호하는 전쟁, 또는 국민생존과 행복을 수호하기 위한 전쟁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잘못 악용하면
공산주의나 국수주의자 또는 파쇼주의자들의 침략행동을 위한 "목적문학"으로 흐르기 쉽다.
나. 부정적 입장
반전적인 입장에서 쓰여진 대부분의 작품은 전쟁이 끝난 뒤에 씌여진 것들이다.
전후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분석해 보면,
전쟁이 단순히 소재로써 존재하기보다는 하나의 상징성을 갖고 작품에 참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세계는 고도의 물질문명으로 본연의 인간성은 마비되고 인간자신을 물질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인간상호간에 있어서 각자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상대를 파멸시켜 버리는 것이 전쟁이며,
이런 전쟁은 인간이 만들어낸 최대의 죄악이며 휴머니즘의 붕괴이다.
전쟁을 증오하는 마음에서 구겨진 인생을 펴고 인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진정한 문학이라면 반전적인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전쟁문학이란 전쟁자체를 고발하고 진단하는 문학이라고 할 수가 있다.
"전쟁과 평화", "서부전선 이상없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등은 이 계열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Ⅳ. 한국 시에 나타난 전쟁관
가. 체험의 시
작가가 처해있는 긴박한 전쟁상황 속에서 직접 체험한 것을 리얼하게 묘사한 시이다.
직접 전쟁터의 상황을 언어로 옮기기 때문에 어떠한 형식이나 과장을 배제한다.
시의 지시적 기능으로 현실을 묘사하고 다른 사람이나 독자들에게 그것을 직접 체험케 해 준다.
이러한 시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전봉건, 김종분, 신동문 등을 들 수 있다.
"100야드, 나는 포복하였다. / 90 야드, / 나는 사정(射程)을 /
80 야드로 압축시켰다. / 65 야드 / 나는 60 야드로 /
압축시켰다. / 나는 저격병의 정조준 위에 놓인다. /
나는 마지막 수류탄을 던졌다......../
따발, 맥심 자동소총의 일제사격이 / 내 심장을 통과하는
45 야드 / 나는 머리를 들었다. / 압축"
- 전봉건의 "01575854" 중에서 -
당시 이등병으로 참전한 이 작가에게는 위 시의 제목을 자기의 군번으로 했다.
100야드에서, 90야드로, 80야드로, 다시 65야드로, 60야드, 45야드로 압축되는 긴박감,
저격병의 조준대에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죽음은 가까워진다.
그러나 그는 죽음의 의식을 망각하고 목표를 향해 거리를 좁혀 간다.
이 압축해가는 거리는 전쟁의 회의나 증오감이 아니라, 오로지 절박한 상황을 극복하려는 집념의 추구이다.
전투묘사에 역점을 두었던 산문시 수법을 쓰고 있지만,
군사용어와 무기명을 사용함으로써 더욱 긴박감과 체험을 돋구고 있다.
전쟁의 절박한 상황은 전봉건의 작품세계에서 많이 접할 수 있다.
G·M·C에 실려서 전선에 투입되는, 오직 이 길로 가야하는 one Way"나 삶의 극한에서
죽음과 끊임없는 대결 속에서 한봉지 비스켓을 그리워하는 "Biscuits"등은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
이와같이 전봉건의 시는 한국전쟁을 이데올로기나 종교적인 면에서나 동족상잔의 비극을
드높은 윤리감으로 의식하지 않고 순전히 자의적으로 파악한 점이 특색이다.
그 밖에도 조영암의 "진격의 노래"에서도 전쟁터의 상황을 체험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제3의 입장에서 극한상황을 관찰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간단없는 섬광, 전광, 폭광의 오로라 같은 조명 하에 작열하는
초토 위에서, 모던발레 처럼 전개되는 제 1 포복, 이어서 제 2 포복,
그리하여 다급히 제 3 포복으로, 자세는 절박되어 갔다.
절박되어가며, 절박되어 갔다. 빨리 끝났으면, 빨리 끝났으면 "
- 신동문의 "제 3 포복"에서 -
섬광처럼 타오르는 포탄의 조명 아래 모던발레처럼 전개되는 포복동작은
인간을 기계화로 예속시켜 버렸다.
여기서는 인간의 존재가치를 부여받지 못한다.
오로지 무의식적으로 움직여지는 제1포복에서 제3포복 속에 뒹굴어야 하는
현실의 가혹한 비극만이 있을 뿐이다.
관념적인 한자어들이 많이 나타나 서정적인 시상은 없지만,
자신에게 참혹한 현실로 토로하는 절박한 심정이 잘 나타나고 있다.
끝 연에서는 이러한 현실의 비극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자신의 독백을 하고 있다.
이러한 독백은 다름 아닌 평화의 희구일 뿐이다.
나. 정념의 시
전장에서 어떤 사물이나 계기를 통해 무언가를 연상하는 것으로,
전쟁을 통해서 고향, 삶과 죽음, 허무, 사랑의 부재 등을 유발하는 내용의 시이다.
[전쟁과 나]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전쟁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이 시는
전쟁은 어디까지나 배경으로 깔리고, 중심 테마 설정은 거기에 등장되는
인간성의 깊이를 파헤치는데 있다.
주로 인간과의 갈등이나 이해 등을 통해 인간성을 탐구하는 작업으로 일관된다.
긍정적인 감상성을 떠나 그 처절했던 전쟁도 하나의 환상으로,
아니 자아를 더욱 쓰라리게 파악하도록 만드는 존재적 계기의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여기, 풋풋한 향기의 과실이 있다.
익지 않은 그대로 몸부림치며,
미래에로 떨어진 과실이 있다.
한번은 가졌던 우리들의 모습이다.
한번가면 돌아올 줄 모르는 너희들."
- 김춘수의 "순정" 중에서 -
산화한 학병들의 영령께 드리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시는 국가를 위해 싸우다 산화한 학병을,
채 익지도 않고 떨어진 "향기의 과실"로 표현하고 있다.
열매를 맺어보지도 못한 젊은 영혼들은 6.25라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의 상황에서 떨어져야만 했던 것이다.
풋풋한 과실은 풍성한 수확을 위해 무반항적인 조건에서 자라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채 익기도 전에 동족상잔이란 민족의 비극 앞에서 희생물이 된 것이다.
이 희생은 "한번 가졌던 우리들의 모습이다"와 같이 나라를 위해 싸운 동 시대의 사람들과 동일시하면서,
한 번 가면 돌아올 줄 모르는 학도병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다음 시에서도 잘 나타난다.
"피는 흘러도 / 젊어서 향기로운 피는 흘러서
늙은 어버이의 가슴에까지 / 어린 누이와
아우의 가슴에까지 스며 번져서"
- 김춘수의 "진혼곡" 중에서 -
휴전협정이 조인된 시기에 쓰여진 이 시도 죽은 자의 넋을 향기로운 피로 미화시켜
고귀한 죽음으로 승화시켜 노래했다.
"하늘도 모르는 이 한 평의 땅에 / 누구의 명령으로 여기에 누웠는가
마음으로 보던 진격의 날에 / 그대는 최초의 기수
하늘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날 / 우리는 이 무명전사자의 무덤에
통일의 기념비를 세우자."
- 황금찬의 "무명전사자의 묘" 전문 중에서 -
어느 날 동작동 국립묘지를 다녀와서 쓴 그의 시이다.
그들의 죽음은 어느 누구의 명령으로 된 것도 아니며,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위해 최초의 기수로서 십자가를 졌을 뿐이다.
오로지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영원히 잠들고 있을 이 묘소에 통일의 기념비를 세우는 것 뿐이다.
정념적인 시상을 담고있는 대표적인 시라고 볼 수 있다.
다. 초토의 시
6.25의 비극이 끝나고 폐허가 된 잿더미를 노래하여,
처참한 전쟁 속에서만 겪을 수 있는 참담한 현실을 그린 시이다.
처참한 상황이란, 포탄의 연기 속에서 몸부림치는 생의 의욕,
피난민의 생활, 월남 피난민의 행렬, 부모잃은 고아들의 처절한 울부짖음,
판자집등을 리얼하게 묘사했다.
이 땅의 시단에 어쩌면 시대와 직결되는 리얼리즘의 시론이 있다면,
그것은 50연대의 상처를 노래한 이들의 시가 아니겠는가 ?
자기냉소와 약소민족, 그리고 동족상잔의 비애를 노래했다.
이러한 형태의 시인들로는 구상, 박남수 등이 이 계열에 속한다.
"하꼬방 유리딱지에 애새끼들 얼굴이 / 불타는 해바라기 마냥 걸려있다./
내려쪼이던 햇살이 눈부시어 돌아선다. / 나도 돌아선다. 울상이된 그림자,
나의 뒤를 따른다. / 어느 정도 접어 든 골목에서 걸음을 멈춰라. / 잿더미가
소복한 울타리에 개나리 망울졌다. / 저기 언덕을 내려 달리는 체니의 미소엔
앞니가 빠져 제 하나도 없다. / 나는 술취한 듯 흥그러워 진다. / 그림자는
웃으며 앞장을 선다."
- 구상의 "초토의 시" 중에서 -
6.25라는 역사적인 비극을 통하여 만나게 된 이야기를 서사적인 형태로 묘사하고 있다.
소용돌이 속에서 스스로의 의미를 불태우는 이 초토의 시는
하꼬방, 검둥이 애새끼, 양키, 피난민의 행렬만이 있을 뿐이다.
전쟁으로 인한 이 비참함을 생생하게 묘사하는데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절망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아름다운 휴머니즘의 시이다.
비극적인 상황을 통하여 건강한 삶의 리얼리티를 제시해 준다.
"행길 위의 머슴애들이, 우- 몰려가 / 수상한 채림의 여인하나를 에워 쌓는다.
돌팔매를 하는 놈, 소똥 말똥을 꿰 매달아 막대질하는 놈,/
'양갈보, 양갈보, 양갈보'/
더렵혀진 모성을 향하여 이들은 / 저희의 율법으로 다스리려는 것이다./
'내가 늬들 어미란 말이냐 ?'어때 ! 어때 ! /거품까지 물어 발악하는 女人을/
지나치던 미군 짚이 싣고 바람같이 흘러간다. / 아우성 소리만을 남기고."
- 구상의 "초토의 시 5" 중에서 -
전쟁이란 진실한 체험을 통하여 쓴 시 15편을 모아 스스로 전쟁문학이라고
후기에 고백하는 이 작품들은 단순한 감성만의 노출이 아니라,
하꼬방의 묘사에서부터 시작되는 슬픈 이야기이다.
전쟁의 그늘에서 삶과 전쟁의 잿더미를 패배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눈물의 미학이 아니라,
건강한 삶과 생명의 의지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라. 저항의 시
자유가 없는 어렵고 고통받는 암흑세계의 존엄성과 참된 자유를 그리는 무언의 저항이며
고독한 자세 즉, 현실로부터의 직접적인 행동표현을 하지 못하는 작가의 압박받는 심적반응이
내면적으로 나타나는 저항의식의 시로써, 김광림과 김영삼이 이 계열에 속하는 작가이다.
"장미의 눈시울이 가시를 배앝은 / 가장 참혹했던 날
육월은, 포탄의 자세들로 터져 간 / 나 또래의 젊음들은
바리케이트로 넘어져 갔다."
- 김광림의 "다리목" 중에서 -
화창한 6월을 맞아 장미를 바라보며 즐거움을 느끼는 작가자신의 눈에서
가시를 돋히게 하는 전쟁에 대한 저항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이 시는 시제를 [다리목]이라는 특별한 시어를 인용함으로써
다른 곳으로 빠져 나갈 수 없는 중요한 시기,
즉 "1950년 6월에 너와 나의 사랑찬 계절을 짓밟고 캐터필러의 두 줄기 자욱만을 남기고 갔다"는
저항적이며 전쟁에 대한 분노를 잠정적으로 가시, 참혹, 포탄의 자세 등의 첨예한 시어를 동원해
묘사해 나가고 있다.
"이 검은 문은 열리지 않는다. / 문밖에 검은 창문이 닫히고 검은 창문밖에
검은 대문이 굳이 닫히고 / 검은 대문 밖에 컴컴한 골목문이 높이 닫히고 /
컴컴한 골목 문밖엔 거창한 검은 거릿문이 튼튼하게 내려 닫혔다. /
나는 도리가 없다. 들어 올 수도 없다."
- 김영삼의 "North Korea" 중에서 -
이 시는 작가가 북에 있을 때, 자기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암흑의 세계에 대해 뼈아프게 저항하며
진정한 자유를 갈망하는 고독한 심정을 토로한 것을 느껴 볼 수가 있다.
이 시에서 작가는 일제 하에서 조국의 독립을 갈망하며 시를 창작하던 윤동주, 이육사 등의
저항시인들을 연상시킬 만큼 광명에 대한 갈구를 숨김없이 표출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시인의 시는 동족상잔의 비애를 가슴깊이 간직한 애절하고도 한이 깃든 분노가 터지는
저항시라기보다는 분노가 가라앉은 비애의 탁마와 시의 구성에 비중을 둔 저항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이들의 저항시는 어떤 유형을 따라서, 욕구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해서,
또는 어떤 인기전술로 씌여진 대개의 저항시와는 그 유형을 달리하고 있으며,
저항과 비평정신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마. 자의식의 시
이 시는 전쟁을 일반화하여 인간의 실존적인 존재를 전쟁의 부정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이것은 당시 사회에서의 반전적인 발언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짐작되며,
한국동란에 대한 전반적 부정의 대표적인 시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계열의 작가로는 안장현, 신동집 등이 있다.
"겨누는 것은 / 분명히 적이 아니라는데, / 적이 아니라는데 그것은 나다. / 포탄은
날아가 터졌는데 / 적은 심장을 뚫었다는데 / 죽은 놈도, 자빠진 놈도 그것은 나다.
- 안장현의 "전쟁" 중에서 -
이 시는 자기 자신의 실존조차 부정함으로써 전쟁에 대한 분노와 저항,
삶의 부재 등을 소리없는 외침으로 퇴폐적이거나 허무적으로 흐르지도 않게
가장 감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 신동집의 [얼굴]에서는 전쟁으로 얼룩진 휴머니즘의 부재를 표현한 외국의 전쟁시와는 달리,
한국인 정서에 끈끈하게 흘러내리는 정에 대한 강한 부정을 이끌어 내고 있다.
이들 시들은 자칫하면 전쟁시가 나타낼 수 있는 감정해소와 탄식의 굴레에서 벗어나,
강한 부정을 통한 강요하지 않은 스스로의 자각에 의한 긍정을 끌어냄으로써,
큰 감동을 준다고도 말할 수가 있겠다.
"어제 만난 얼굴은 다시는 볼 수 없습니다. / 오늘 만난 얼굴은
어제의 얼굴이 아니 올시다. / 좀더 찢어지고 부숴지고 이즈러진
얼굴의 복수 / (중략) 그러나 나는 / 몇 사람의 인간의 이름이 /
오늘처럼 그리운 적이 없습니다."
- 신동집의 "얼굴" 중에서 -
Ⅴ. 맺 음 말
전쟁문학이라고 부르는 개념이 문학작품에 나타난 것은,
문학이라는 그 존재가치의 역사와 시기적으로 동일하나,
전쟁문학이라고 하는 용어가 쓰인 것은 대체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부터
주로 미국과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고 앞에서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우리들 한국인은 1,2차 세계대전을 체험하지도 못한 채 해방을 맞이했고,
건국의 청사진 역시 그려보기도 전에 3차대전의 화신과도 같은 한국동란을 겪어야만 했다.
서구의 경우는 1,2차 대전 이후에도 파괴와 건설, 초토와 창조, 혼란과 질서가 큰 명제로
다루어졌다고 할 때, 이것은 두말할 나위없이 문화적인 측면이나 문화사적인 견지에서
다루어졌으며 문학의 활동은 그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나서기 마련이었다.
따라서 전쟁과 문학, 전후 상황과 문학의 관계는 파괴와 건설, 초토와 창조,
혼란과 질서의 관계를 집약한 서구의 오랜 역사나 문화의 전통을 보다 심화시키는 동시에,
거기에 새로운 시나 새로운 문화의 뿌리를 내리어 왔다고 볼 때 과연,
한국전쟁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무엇을 가져 왔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한국전쟁은 한국인에게 고난을 강요했고, 시인들에게는 나름대로의 시를 쓰도록 강요했다.
한 영토 안에서 동족상잔, 삶과 죽음의 차이가 없는 생지옥, 적나라한 인간의 군상과 포화 앞에서
길을 잃은 동포, 이런 상황 하에서는 시인이 아니더라도 시상이 떠오르게 마련이었고,
시인이라면 미쳐버리지 않거나 시를 쓰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미 시인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전쟁시라면 이론적으로는 어떻든 간에 전쟁의 참상 속에 던져진 인간의 비애와 더불어
전쟁이 없는 밝은 미래를 노래하는 것이 아닐 수 없었으며,
한국을 전장화시킨 <이즘>에 대한 고발이 아닐 수 없었다.
한국전쟁론에 발표된 모윤숙, 유치환, 구상을 비롯한 몇몇 시인들과 현역장교였던
카키색의 시인들은 한국전쟁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시의 착상,
소재, 기교, 주제 등 한국시의 저변을 넓히는 동시에 시의 관념을 개혁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그 후에 씌여지는 시에 대해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가 있다.
이러한 영향에 따라 6.25 이후의 한국시에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유형의 전쟁관이 나타나게 되었다.
첫째, '사실(체험)의 시'로 작가가 처해 있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직접 체험한 것을 리얼하게 묘사하여 실감을 준다.
그 대표적인 예로 전봉건, 김종문, 신동문의 시가 이 계열에 속한다.
둘째, '정념의 시'로 전쟁에서 어떤 사물이나 계기를 통해 무엇인가 연상하는 것으로,
전쟁을 통해서 고향. 삶과 죽음. 허무. 사랑의 부재 등을 유발하는 내용이다.
김춘수, 황금찬의 시가 이 계열에 속한다.
셋째, '초토의 시'로 6.25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폐허가 된 잿더미를 노래하며,
처참한 전쟁 속에서 겪어야 했던 극한상황을 노래한 시이다.
구상, 박남수, 박인환의 시가 이 계열에 속한다.
넷째, '저항의 시'로 자유가 없는 암흑세계에서의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참된 자유를 그리는 무언의 저항과 고독한 자세를 표현한 시이다.
김광림, 김영삼의 시가 이 계열에 속한다.
다섯째, '자의식의 시'로 인간의 자의식 상태에서 전쟁을 부정하고,
전쟁의 비극을 타살이 아닌 자살로 보는 입장에서 쓴 시이다.
안장현, 신동집의 시가 이 계열에 속한다.
이상에서 나타난 시를 통해 우리는 전쟁이 주는 절박하고도 처참한 상황을
피부로 접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에서 느껴 보았다.
한국전쟁을 사이에 두고
그 이전의 시와 그 이후의 시를 비교/검토해 보면 현저히 변모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 50 - 60년대 및 70년 이후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의식했던 의식하지 않았던 간에, 마치 한국전쟁에서 입은 상처에 의해서
시의 풍모를 다양하게 드러내왔다는 점은 그대로 보아넘길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상황은 다양하게 변해왔지만 전쟁이라는 큰 파도가 준 영향은 우리의 시를 통해 볼 때,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의 시인들이 국내적인 상태와 국제적인 정세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쟁의 후유증은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상황에서 전쟁문학은 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
그들의 뇌리 속에 암시되어 있는 인간의 실존에 대한 갈망과,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해가는 과정인식은 물론, 과학과 문명을 선도해 나가는
문학의 한 장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가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