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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 서 평

이인화의 '만세전'

    이인화의
    
    '만세전'을 읽고
    
    
    우리 역사에 있어 치욕적이고 암울한 시기를 뽑아내라면 당연히 일제36년을 이야기하는데 
    주저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국가를 빼앗기고, 땅을 잃어버리고, 제 이름마저 갈아야 했던 쓰라린 역사, 
    조국의 독립을 위해 스러져간 선혈들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이 땅위에 오롯이 남아있다.
    지난 식민치하에서 자행되었던 일제의 행동들, 그리고 주권국민으로서의 모든 권한을 박탈당하고 
    일제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했던 그 모든 것들이 민족적 수치임과 동시에 우리가 당한 대표적인 피해라고 
    할 수 있고, 아직도 남아있는 일본에 대한 악감정의 주된 원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몇 마디 말은 큼직큼직한 일들만을 나타낼 뿐 실제로 그 시대 조선인들의 감정이나 생활은 
    당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으리라.
    사실 진정으로 한 시대를 이해하려면 당대의 현실적 삶을 자세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 점에서 이 작품은 
    일제시대 우리 민족 구성원들의 인생과 암울했던 당시의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이 글은 한 동경유학생이 귀국하면서 나름대로 보고, 듣고, 느낀 사항을 기록하여 
    제시함으로써 당대의 현실을 그렸다.
    주인공인 '나(이인화)'는 조선인으로서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조혼(早婚)한 아내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코베(新戶)와 시모노세끼(下關)를 거쳐 부산을 통해 서울에 도착하자 아내는 이미 죽은 뒤였다.
    장례를 치른 뒤 다시 떠나는 것이 이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이다.
    우울한 지식인인 나, 명예욕에 들떠 정치가를 꿈꾸지만 실속이 없는 아버지, 
    보통학교 훈도(薰陶)로 현실에 순응하여 무너지는 집안의 경제를 다시 일으킨 형, 
    일본 유학 후 식민지 관료가 된 종형(從兄) 병화, 
    그리고 무위도식하는 종손(宗孫) 등이 주된 구성인물로 친일적인 가정을 이루고 있다.
    글의 첫 부분에서 '나'는 별다른 민족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고, 
    현실에 대한 아픔같은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하며 심지어 아내의 죽음에도 무덤덤하다.
    일본으로 유학한 것도 조혼(早婚)한 아내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귀국선에서부터 일본 형사가 따라 붙게되고 
    이때부터 서서히 식민지 백성의 고통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특히 배 안의 목욕탕에서 일인(日人)들이 조선인을 멸시하는 말을 하며 웃어대는 것을 보고는 
    일종의 경멸감을 느낀 후, 그는 방관자에서 관찰자로 바뀌어 군국주의 일본의 모습과 
    조국의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데 부산항에 도착하여 형사에게 다시 시달리고는 
    서울까지 가는 동안 식민지 백성의 처참한 삶을 목격한다.
    다시 일본으로 향할 무렵 일본인 여급(女給)으로부터 구혼(求婚)을 받고 거절하는 그의 대답에서 
    작품의 핵심 내용이라 할 '조선의 해방'이 뚜렷이 나타난다.
    이인화는 글 속에서 그야말로 식민지 청년의 대표격인 것처럼 보인다.
    이상적인 가치와 현실사이에서 갈등을 자주 느끼고 우울증까지 보이는 그는 
    민족의 해방을 동경하면서도 일본으로 유학하는 등의 자기모순적 행동까지 하는데, 
    이것은 그를 통하여 우유부단하고 무능력한 당시의 지식인층을 꼬집으려 한 작가의 의도로 보여진다.      
    이 작품은 그리 길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일제치하 우리 민족의 삶, 
    그 중에서도 소시민적 지식인의 고뇌와 행동을 잘 나타낸 것 같다. 
    또한 동물처럼 억압받는 조선 백성들의 고통도 단순한 설명이나 나열이 아닌, 구체적인 예를 통하여 
    묘사하고 있어 부가적인 해설 없이도 그 암울했던 시기를 자세히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심한 멸시와 수모를 당했기에 
    3·1운동과 같은 거국적인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절실하게 다가온 것은 
    정말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민족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과거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올바른 미래도 없다'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물론 지난 과거를 가지고 전전긍긍한다거나 과거사에 얽메여서도 안되겠지만 그릇되고 잘못 엮여진 
    과거사를 모조리 잊고서야 올바른 미래의 건설도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당시 그렇게 비참한 위치로 전락한 것은 우리 자신의 탓도 크기에 
    앞으로는 우리가 영원히 당당하고 떳떳할 수 있도록 남에게 뒤지지 않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