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비에 던지는 소회(所懷) / 청송 권규학
빗줄기 추적이는 처량한 새벽, 잠이 오질 않는다.
암울하다, 앞이 보이질 않는다.
자갈밭 지나면 가시밭길이요, 가시밭길 건너면 천 길 낭떠러지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고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할 험로(險路)다.
그래도 와야 하고 또 가야만 한다.
와야 할 때 오지 않으면 오고 싶을 때 오지 못할 것이요,
가려 할 때 가지 않으면 꼭 가야할 때 가지 못할 것이기에…
세상이란 험한 바다에 던져져 세찬 물결, 험한 파도에 짓이겨진 삶
온몸에 새겨진 숱한 상처들, 어찌하면 지울 수 있을까.
이 상처라는 녀석, 지우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지워질 놈이던가.
지워졌다고 해도 그것은 착각일 뿐, 언젠가는 다시 또 떠오르고 말 텐데…
지지고 볶으며 사는 세상사, 누가 잘 했고 또 누가 못했을까를 따질쏜가.
누가 누구를 손가락질하고, 질책하고 또 용서한다고 할 수 있을까?
'용서(容恕)'란 게
'미움'이란 실향민에게 작은 방 한 칸 내어주는 것이라면
'상처'란 건 어쩌면
'성장'의 다른 이름으로 첫걸음 내디딘 탐험가 인지도 모른다.
상처 하나 없이, 과거의 경험 없이 어찌 이 험한 세상을 헤쳐갈 수 있을까.
모름지기 과거란 이름의 든든한 배경의 뒷받침 없이
어찌 단 한 걸음일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
어찌할까, 어떻게 할까, 망설이거나 고민하려 하지 말 일이다.
그냥 웃으면 그만이다.
울지 말고 하늘을 향해 크게 웃으면 그뿐이다.
내가 웃으면 내 주변의 모두가 함께 웃어주겠지만,
눈물을 보이면 오직 나 혼자만의 청승맞은 울음이 될 것이 뻔한…
마냥 털자, 작은 것 하나라도 담지 말고 몽땅 털어내자.
주먹을 움켜쥐면 그 안에 아무것도 채울 수 없지만,
손을 펴면 많은 걸 담을 수 있듯이 두 손을 활짝 펴고 미래를 보자.
오늘,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 분명하기에…
우리의 만남에서 지금 누가 옳고 또 누가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을까.
잘 했고 못 했고, 잘 만났고 못 만났음을 판단할 수 있는 건
시작할 때가 아닌 끝이 날 때 비로소 판가름이 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의 삶이 아무리 애달프고 고통스럽더라도
늦은 밤까지 서로 함께 상처투성이의 진흙탕을 뒹굴다가
이른 아침 눈을 떴을 때
눈곱 낀 너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다면 그저 행복이라 여기리.(1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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