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리 / 청송 권규학
가을 끝자락, 온 들녘이 몸살을 앓는다
추위가 몰려오기 전
서둘러 자손을 퍼트리려는 식물들
더 많은 싹을 내고
하나라도 더 열매를 맺으려는 안간힘
가히 생존경쟁의 치열함이 눈물겹다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아
유난스레 조용한 밤
하늘 가득 별이 총총한 전원(田園)
별들의 자장가에 깊이 잠들었다가
잠을 깨니 세상이 온통 하얗다
그토록 들녘을 들쑤시던 풀꽃과
고추도, 가지도, 호박넝쿨도
제잘난 듯 으시대던 잎채소들
하나 같이 푸욱 삶겨
고개를 숙인 채 풀이 죽어있다
그랬으면 좋겠다
무서리든, 된서리든
복잡한 이 세상에 흠뻑 내려
난마(亂魔)처럼 얽힌
갈등과 이해관계의 싹들
모조리 삶아 없애줬으면.(16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