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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자작글

나무가 그러하듯 까치가 그러하듯

 

 

나무가 그러하듯 까치가 그러하듯 / 청송 권규학

 

 

내 고향 동구 밖, 얕은 개울을 낀 산기슭에

쭈뼛쭈뼛 하늘을 찌를 듯 미루나무 몇 그루 높이 솟아 있다.

한 때는 그랬을 것이다.

언 땅을 비집어 싹을 내고

끝 모르는 욕망으로 하늘을 치솟는 나무의 열망

그것이 못마땅했는지 자꾸만 곁가지를 잘라내는

어느 촌부의 결연한 의지 앞에서도

나무는 생가지를 찢는 아픔을 꾹꾹, 눌러 참는다.

 

나무는 사시사철 쉴 틈이 없다.

봄이 오면

싹을 내고 가지를 뻗어 하늘에 시위할 것이며

여름엔 나무의 정수리에 햇볕을 받고

가을, 따가운 햇살에 온몸이 마를 때쯤

겨울, 어느새 겉옷을 벗고 깔끔하게 리모델링을 하는…

 

나무 꼭대기엔 고슴도치의 등껍질 같은 까치집이 걸려있고

그 까치집에선 해마다 앙증맞은 새끼들이 깍깍거리며 햇볕을 쬔다.

어미까치는 또 제 나름대로 바쁘다.

마른 나무를 물어다 집을 짓고,

부드러운 풀잎으로 둥지를 치장하고

뾰족한 가시를 밖으로 빼내어 천적의 침입에 대비하기까지

까치의 계절나기는 흡사 전쟁터 병사의 생존본능과 다를 바가 없다.

 

나무와 까치의 겨울나기가 이렇거늘 인간은 오히려 무덤덤하다.

나무는 더울 때 옷을 입고 추울 땐 옷을 벗지만

인간은 더울 때 옷을 벗고 추울 땐 옷을 껴입는다.

자신을 위해 치장하는 나무와는 달리

순전히 자신이 아닌 남에게 잘 보이려는 가식일 뿐이다.

하나뿐인 생명이 아니라면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나무처럼

벌거벗은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살면서도 불평 하나 없는 까치처럼

사람도 그렇게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충족할 순 없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현실의 아픔에 좌절하지 않고

사시사철 자연과 아우르며 살아갈 수 있다면…

정말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무가 그러하듯 까치가 그러하듯이.(15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