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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자작글

전원일기(田園日記)1 -인생의 봄, 그 첫삽을 뜨며-

 

 

전원일기(田園日記)1 -인생의 봄, 그 첫삽을 뜨며- / 청송 권규학

 

 

봄이 왔다.

겨울 지나고 계절의 봄(春)이 찾아왔듯이

내 짧은 인생, 아니 그 길고도 긴 인생에 연둣빛 새봄이 왔다.

철부지 어린 시절, 지지리도 부모님 속을 썩여드렸던 개구쟁이가

어느새 이순(耳順)의 나이를 먹어 인생의 새봄을 열었다.

참으로 기나긴 인생 여정이었다.

철모르고 지나버린 어린 시절, 공부 또 공부, 다시 또 공부하라고…

그래야만 출세(?)한다며 몰아붙이셨던 부모님의 얼굴들,

이젠 내가 그 부모가 되어 자식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그리도 집요하게 따지고 들었을까?

공부, 그 공부란 게 무엇이기에…

공부를 잘했든, 잘하지 못했든…, 세월은 흐르고 또 흘러

계절은 춘하추동(春夏秋冬), 사계절을 소리소문없이 넘나들었다.

 

10대는 언제였는지도 모르게 지나갔고

20대, 그 꿈많던 시절은 봄눈 녹듯이 녹아들었다.

30대, 결혼이란 필연의 길을 따라 하늘 땅, 들녘을 휩쓸고 다녔고

40대, 불혹(不惑)의 시절은 가정의 굴레에 묻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50대,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의 시절을 한 가닥 남기고

60대, 정년을 코앞에 두고 이순(耳順)의 이름으로 새로운 인생을 꿈꾼다.

 

공복(公僕)의 길 40년 세월, 언제 이리도 많은 세월이 흘렀을까.

늦었다고 할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시작할 수 있음이 빠르다고 할까.

스쳐 지난 세월의 숱한 편린들이 뇌리를 뚫고 들어온다.

사춘기, 철없던 시절의 방황기를 끝내고,

가장(家長)이란 책임감에 남모르는 비밀 하나 가슴에 담고,

남들이 다 아는 고민덩이를 등짐으로 짊어지고 살아온 세월,

잘 살았든 못 살았든 인제야 삶의 무거움을 털고자 한다.

마음 안에 가득 찬 그 복잡한 욕심덩어리,

짊어진 등짐의 무게를 어찌하면 털어낼 수 있을까.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었던 숱한 아집들,

이순(耳順)을 넘기면 가볍게 털고 일어설 수 있을까.

 

'전원(田園)의 꿈(夢)'이라!

 

말이 좋아서 꿈(夢)이란 이름으로 위안을 받지만

사실상 여기까지 오기에는 엄청난 고통과 번민의 세월이 흘렀다.

초가(草家)도 지었고, 슬레이트 집과 기와집, 슬라브에 조립식 집까지…

지었다가 허물고 다시 쌓아올린 그 꿈 중 하나가 싹을 틔우려고 한다.

그렇게 되기까지엔 아직도 멀고도 먼 험로가 앞을 막고 있지만

숱하게 꾸고 또 꾸었던 '전원(田園)의 꿈(夢)',

이제야 요원했던 그 꿈길을 향해 의미심장한 첫 삽을 뜬다.

농업인의 자격을 얻으려면 토지 1,000㎡(303평)가 기본이라고 하기에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어 도시 근교에 작은 농지(農地)를 마련했다.

능력(?) 있는 사람이 보기엔 아주 사소한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외길 인생을 고집한 나로서는 그것 자체가 적지않은 힘든 일이었다.

있는 것 없는 것 끌어모으고 빚을 얻어 천신만고 끝에 이룬 쾌거(?)였다.

꿈(夢)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온몸에 쌓인 찌든 때를 벗겨내듯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거침없이 걷듯이

그 시작은 어려웠지만, 진행과정은 순탄하게 풀려나갔다.

토지 한쪽에 농막을 꾸미고, 경계지점으로 생울타리 나무를 심었다.

미리 심어진 매실나무엔 이미 꽃봉오리가 맺히고

가장자리의 참죽나무에도 연둣빛 새싹이 울먹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난잡하게 얽힌 대추나무를 정리하니 나름 모양새를 갖추었다.

 

농지(農地)란 이름, 농업인이란 이름은 그리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농지(農地)를 놀리면 농지전용이란 이름으로 과태료가 나온다고 하기에

잘 알지도 못하는 햇병아리 실력으로 땅을 일구고 씨앗을 뿌렸다.

이곳저곳 눈대중 귀동냥한 상식으로 슈퍼도라지와 일반도라지,

부추와 들깨 씨앗을 뿌리고, 나머지 200평 정도엔 약초(맥문동)를 심고

울타리 쪽 둑에는 머위와 호박 몇구덩이를 심으려고 한다.

어렵게 마련한 땅에 씨앗을 뿌린다는 것, 참으로 '작은 땅 큰 기쁨'이었다.

언제, 어떤 모습의 싹이 날까.

하루하루가 궁금하고 일일 여삼추(一日如三秋)가 따로 없었다.

마음 가득 기대감과는 달리 막연히 기다리는 것도 쉬운 게 아니었다.

눈치 없는 봄이 보내는 잡초들의 궐기, 하루가 멀다 않고 피어나는 풀꽃들,

눈요기만으로 즐거워할 일은 전혀 아니었다.

손발이 고생해야 했고, 그럴 때마다 온몸엔 어김없이 몸살이 찾아들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잠시도 쉴 틈 없이 관리를 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고서 단 하루라도 게으름을 피울 양이면

봄이란 계절은 어김없이 자기만의 독특한 심술로 괴롭힘을 준다.

별꽃, 쇠별꽃, 봄까치꽃, 냉이, 민들레, 지칭개, 꽃다지, 꽃마리, 그리고…

제각각의 이름 모를 봄풀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끈질기게 도전을 한다.

정말이지 그 아름다운 풀꽃을 보고 왜 잡초(雜草)란 이름을 붙였는지

새삼 알게 되었고 뼈에 사무치게 느끼고 또 느끼는 순간이다.

 

누군가 그랬다.

'왔다갔다 도로교통비에 자동차 연료를 소모한 만큼 성과를 낼 수 있겠느냐?'고

듣고 보면 고생만 하는 듯하지만 꼭 그렇게만 생각할 것은 아닌 듯하다.

아직은 전원(田園)에 모든 걸 맡기지 못하지만 머잖은 장래엔

농막생활(農幕生活)을 시작으로 전원(田園)과의 첫 입맞춤을 할 것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듯이 힘들지 않고서 어찌 기쁨을 맛볼 수 있으랴.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견디고 나면 머잖아 기쁜 날이 올 것이 분명한 일,

그 달콤함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것은 고통이 아니었다.

힘들다는 것, 그것 또한 결코 힘듦이 아니었다.

몸뚱이의 고통과 아픔은 일종의 기쁨과 희열의 채찍과 당근이기도 했다.

내 손이, 내 발이 거쳐 가는 곳마다 하나씩 바뀌는 모습들,

정녕 자연(땅)은 땀을 쏟은 만큼 환희의 순간을 남겨주곤 했다.

비록 늦은 지금에야 첫 삽을 떳지만 늦지 않았다고 자신을 질책한다.

아니, 질책이란 말보다는 자신을 격려한다고 하는 게 맞을 듯하다.

'결코 늦은 게 아니라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바로 빠른 것'이라고…

 

언제부턴가 깔끔하던 차량 바퀴에 흙빛이 떨어질 날이 없다.

발 받침은 물론이려니와 트렁크 속엔 흙 부스러기와 지푸라기 투성이요,

레저용품이 들어있던 트렁크엔 온갖 농기구들이 차지해 버렸다.

트렁크 한쪽에 비스듬히 기댄 채 마주 바라보는 장화 한 켤레,

쇠스랑, 낫, 막삽, 곡괭이, 호미, 접이식 톱, 전지가위, 갈퀴, 그리고…

레저용품에서 농기구로 바뀌어버린 승용차 트렁크의 모습처럼

내 남은 인생도 흙빛으로 물들어짐을 부인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그런 모든 게 내 남은 인생의 한 줌 희망일지도 모를 테니까.

초보운전이 쉽지 않듯이,

힘은 들지라도 초보농군으로서 첫 삽을 뜨는 지금 이 순간이

어쩌면 내 삶의 가장 큰 기쁨이요, 행복의 순간이 될는지도 모른다.

 

서서히 삶의 전면으로 부상하는 인생의 봄,

계절의 봄은 갈지라도 인생의 봄날은 한참 동안 그곳에서 서성일 것이다.

뿌린 씨앗이 모래땅에 뿌리를 내려 제대로 된 작물의 형태를 갖출 때까지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쉬지 않고 잡초와 싸워 이겨낼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노라면 내 인생의 봄날도 여물 것이다.

그렇게 되길 바란다. 꼭 그렇게 되길 기대한다.

그리 되어서 나는 물론, 나 아닌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길 소망한다.

자연(숲)과 문학과 사랑이 함께하는

내 작은 '전원(田園)의 꿈(夢)'이 활짝 꽃을 피우는 그런.(1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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