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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자작글

미용실에서

 

 

미용실에서 / 청송 권규학

 

 

귀밑머리 하얗게 날이 서

뻣뻣하기가 이를 데 없는

길길이 고개를 쳐드는 머리칼을 자르려

동네 골목 미용실을 찾았다

 

처음엔 부끄러워 얼굴도 들지 못한

여자들만의 전용이라 여겼던 그곳

이젠 버젓이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출입문을 연다

 

일제히 쏟아지는 시선

여덟의 눈동자를 의식하며

빈자리를 찾아 앉는다

여주인의 능숙한 손놀림이 이어진다

 

반들반들한 소갈머리

고갤 쳐드는 귀밑머리 하얀 세치

늙은 살을 비집고 나온, 가는(細) 머리칼

하나 둘 세며 자르기가 그리 쉽던가

 

앞 거울에 반사되는 두상(頭像)

머리 중앙의 동그란 축구장 하나

후유- 나도 몰래 긴 한숨을 내쉰다

 

귓가에 느껴지는 미용사의 조소(嘲笑)

뒤통수를 지나 귓전에 전달된다

또각또각

어디선가 세월 흐르는 소리 들린다.(12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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