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호사다마(好事多魔)려니 / 청송 권규학
전원(田園) 뜨락, 한 여름 초록을 뽐내던 고춧대를 뽑았습니다.
쭈뼛쭈뼛, 푸른색 붉은색 열매를 단 녀석들, 잘라내고 뽑아내고 잎을 땄습니다.
올해는 예년과는 다른 게 있었습니다.
미루나무 가지에 줄줄이 매달린 매미처럼,
해마다 고추나무 줄기의 진액을 빨던 노린재가 보이질 않습니다.
무당벌레 애벌레는 물론, 그렇게 흔하던 꽃매미(중국매미)도 없습니다.
무슨 일일까.
나로선 신선한 고춧잎을 얻을 수 있어 좋은 일이 분명하지만
이유 없이 곤충들이 사라졌다는 걸 그냥 넘기려니 켕기는 게 많습니다.
세상 일이란 게 호사다마(好事多魔)*의 연속이기에...
고춧대를 뽑아낸 자리에 가을무 씨앗을 뿌렸습니다.
가을무는 성질이 급한 지 씨앗을 뿌린 지 채 사흘도 되지 않아
볼록볼록, 연초록빛 떡잎을 밀어 올립니다.
어느새 일곱 번째 대면하는 가을무 새싹들...,
솟아오른 여리디여린 키다리 새싹, 자라기도 전에 흐물흐물 무너집니다.
태풍 힌남노*가 훑고 지나간 자리엔 흔적도 없이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완전히 꺾어진 곳엔 다시 씨앗을 넣고 약한 줄기에는 이불처럼 흙을 덮어줍니다.
움직일 수 있는 동물이든, 천형을 받은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이든,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건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흙을 덮어주자 금세 힘을 낸 듯 안정을 되찾는 새싹의 모습이 눈에 보일 듯합니다.
어린 새싹이 뿌리를 달 때쯤이면 계절은 또 겨울, 세월은 또 한 해를 뒤로 할테지...
세월의 흐름은 빠르다 못해 경주마처럼 전력질주를 합니다.
60Km로 달리는 세월이 70Km의 속도를 낼 때 즈음이면
내 삶은 또 어떤 형태의 껍질을 뒤집어 쓸까?
하루 또 하루..., 변함없이 흐르는 세월 속,
껍질이 아닌 두꺼운 껍데기의 각질로 굳어버릴지도 모를 일,
예측불허의 세상이기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일도 아닌 듯합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오면 다시 또 가을 겨울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굳이 바뀌는 계절을 따라 동분서주하며 바삐 움직일 필요도 없을 듯합니다.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지만 좋지 않은 일도 번갈아 올 수 있는 법,
부유할 때 아끼고, 여유로울 때 조금 더 부지런히 일을 하며,
하나둘 대비하는 삶을 사노라면 살아가는 삶이 그리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기에.(220906)
* 호사다마(好事多魔) : '좋은 일에는 방해되는 일이 많이 생길 수 있으니 방심하지 말고 늘 경계하라'는 뜻
* 힌남노 : 2022년 '제11호 태풍'으로 라오스에서 제출한 이름.
'라오스'의 '국립보호구역' 이름을 따서 만든 것으로 '돌, 가시, 새싹'을 의미한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