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정리하며-비움의 미학- / 청송 권규학
낡은 책장을 정리합니다
대부분 오래된 것들인지라
헤어지고 굽은 것들
색이 바래고 삭은 것들
뒤틀어지고 변형된 것들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많습니다
새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할 순 없습니다
새로운 책장에 책을 꽂기 전에
일단은 버리기로 합니다, 하지만
낡고 헤진 것들에서도 소중함이 느껴지고
유독 애착이 가는 게 있습니다
그래서 버리기 전에 다시 쓸 것을 챙겨둡니다
낡은 책에서 풍기는 매캐한 곰팡이 냄새
그 냄새보다 더 진한 삶의 냄새가 있기에
수십 년의 세월을 함께한 낡은 책들
그곳에서 내 젊은 시절의 추억을 찾아냅니다
별로 읽지도 않은 책에서도
그저 따뜻한 정이 샘솟습니다
산다는 것도 바로 그런 건가 봅니다
늘 고급진 것들, 멋진 것들 속에 묻혀 살다 보니
옛것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살았나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다 챙기며 살 수는 없습니다
쓸 건 챙기고 버릴 건 버리고
주변의 일상을 정리하고
마음속 잡동사니까지 비워내고
모두 쓰고 버리면 마음까지 홀가분해진다는.(2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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