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소묘(素描)3 / 청송 권규학
봄의 첫날
모든 꽃이 한꺼번에 피지 않듯이
세상살이 역시
한순간에 모든 게 이루어지진 않습니다
자연은 쉼 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지만
제대로 알아듣질 못하는 인간들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려 하질 않습니다
세상 사람의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옳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그 길을 가지 않으려 하고
그르다는 걸 알면서도
단호하게 접질 못하는
고집과 아집으로 똘똘 뭉쳤다는
키우는 강아지도 너무 많이 예뻐해 주면
더 잘해 달라고 달려들고
너무 오냐오냐 들어주다 보면
크게 될 것도 제 풀에 무너지고 맙니다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듯이
바르게 크지 못한 가지는 잘라내야만
제대로 된 거목(巨木)으로 성장합니다
올가을은 애타게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 우리 곁에 묻어왔습니다
생생하던 어제의 일들이 추억이 되고
오늘의 일도 저만치 멀어집니다
왠지 무섭기만 합니다, 덧없는 세월이
괴롭고 힘든 나날을 이겨내고 나면
가을바람처럼 선선한
기쁨의 순간이 찾아오리라 믿으며
가슴 한편에 오롯이 갈무리합니다
언제라도 꺼내볼 수 있는 추억의 이름으로.(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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