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의 노래(2) / 청송 권규학
하얀 머릿결 넘실대며
소슬바람에 온몸을 일렁이는
가을 숲의 늙은 무희(舞姬)여!
밤이면 밤마다 별빛을 받으며
진한 외로움을 솎아내는
하얀 꽃술에 맺힌 낡은 그리움
가을밤, 미리내 강물을 찍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리는
희다 못해 시리디시린 은빛 물결
만추(晩秋)의 모퉁이에서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 보며
세월을 곱게 빗질하는 억새여
풀이라고 할까
꽃이라고 할까
둘을 합쳐 풀꽃이라고나 부를까?
향기는 없어도
갈빗대 부딪치는 소리에
끊임없이 찾아오는 하얀 발걸음
까맣게 타들어 가는 가슴
밤낮없이 통곡하는 바람
억새와 바람은 적인가, 친구인가
자드락*으로 뚫린 숲길
소슬바람 지나고서 옷고름 추스르는
으악새, 너 하얀 억새꽃이여.(170930)
* 자드락 : 낮은 산기슭의 비탈진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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