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페트리니(김종덕․이경남 역, 나무심는 사람)의
‘슬로푸드-느리고 맛있는 음식 이야기-’를 읽고
참 바쁜 세상이다.
산골 오지에도 초고속 통신망이 깔린 세상.
초스피드 시대에 ‘대량생산’이니, ‘무제한의 속도’니 하는 말은 이미 낡은 말이 되었다.
하는 일이 무엇이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걸려오는 휴대전화에서 자유로운 채
느긋하게 앉아 식사할 시간을 잃은 지는 이미 오래이다.
왜 이렇게 바쁘게 되었을까. 사람을 이리 급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그 사람이 어떤지를 알려면 그 사람이 먹는 것을 보라’라는 말이 있다.
사람을 가장 결정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신분이나 학식,
혹은 교육 못지않게 음식이라는 이야기다.
‘느리고 맛있는 음식 이야기’란 부제가 붙은 ‘슬로푸드’는
‘슬로푸드 운동’의 계간지「슬로」에 실린 글 가운데 빼어난 작품을 추려 실은 것이다.
알려지다시피 슬로푸드 운동은 지난 89년 로마의 유서깊은 스페인 광장에 패스트 푸드의 대명사격인
맥도널드가 들어서는 것에 충격을 받아 이 책을 엮은 페트리니의 주도로 시작된 운동이다.
출발 당시 슬로푸드는 패스트 푸드에 밀린 식탁의 즐거움을 되찾고 보호하며,
좀더 세심한 감각을 훈련해 고급스러운 미각을 개발하는 문제에 관심을 집중했다.
이런 배경을 가진 만큼 책은 슬로푸드 운동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옛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왕까지 역사가 올라가는 맥주와 한국의 청국장을 연상케하는 푸른 곰팡이가 낀 치즈,
피가 뚝뚝 떨어지는 육회 등, ‘오래되고 느려서’ 맛있는 지구촌의 각종 음식 이야기도 재미있게 다룬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의 슬로푸드라 할 김치와 된장, 고추장 등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책이 제기하는 문제는 단순한 음식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우리의 입맛을 넘어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민과 토지, 생태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전반적인 삶의 태도로 관심을 확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먹는 문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고 세상이 바뀐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빠서 패스트 푸드를 먹는 것이 아니라 패스트 푸드를 즐기기 때문에 바쁜 것이다.
역시 먹는 것은 사람을 결정하는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