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후감 · 서 평

백선엽의 '군(軍)과 나'

    백선엽의
    
    '군(軍)과 나'를 읽고
    
    
    언제였던가...?        
    아마 처음 군 생활을 시작하던 사관학교 가입교 시절인 1978년도 9월경이지 싶다.
    그 당시 가입교 지도를 나왔던 선배님으로부터 '한국군 최초의 사성장군(四星將軍)이 누군지 아느냐?'는 
    질문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 당시로는 정말로 알지도 못했고, 나는 물론 그 당시의 동료들로서는 
    누구도 거기까지 관심을 두지 않던 부분이었으며 또 관심을 가질만한 여유도 없었던게 사실이었다.       
    그때 그 선배는 '사관생도가 되려는 사람이 한국군 최초의 4성장군을 몰라서야 되겠느냐 ?'는 
    핀잔 투의 말과 함께 그 분(백선엽 장군)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고 
    그 설명에 뭐가 뭔지도 모른 채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20수년의 군 복무 중에도 가까이 하지 못했던 그 분에 대한 진면목을 군 생활을 마무리한 
    지금에서야 '군과 나'라는 자서전을 통해 접하게 된 것도 일종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다.
    장군은 이 책에서 6.25에 대한 생생한 기록과 함께 
    한국군이 걸어온 길을 대한민국 국군 창설자의 입장에서 하나하나 제시하고 있다.
    나 역시 20수년의 군복무를 통해 한국전쟁에 대한 다소의 지식을 접하긴 했어도 
    우리 군의 발전과정이나 한국전쟁 시의 주변 여건, 전쟁 경과, 그리고 휴전에 이르기까지 
    그 세세한 진상까지는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였다.
    이에 군의 간부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최소한 최일선에서 전쟁을 직접 체험한 선배였던 
    야전 지휘관의 임무와 자세 등에 대해 간접적이나마 체험해보고자 이 책의 첫 페이지를 넘겼다.
    대한민국 국군 창설자의 한 사람이었던 백선엽 장군은 1920년 평안남도에서 출생, 
    26세의 청년기에 월남하여 연대장, 사단장, 군단장, 휴전회담 한국대표, 야전전투 사령관, 
    참모총장을 거쳐 국국 최초의 4성 장군에 올라 연합참모본부 의장을 역임하였으며,
    전역 후 중화민국, 프랑스, 스페인, 카나다 대사직을 수행한 후 교통부 장관직을 역임하였다.  
    또한 장군은 전쟁에서 혁혁한 전과와 우리 군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태극 무공훈장, 을지 무공훈장 등, 다수의 국내 훈장과 각 국의 대사로 재직 시 
    수상한 타국의 훈장 등에서 그 분의 공적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회고록에도 저자의 고매한 인격과 훌륭한 군인정신은 도처에 숨어있다.
    가령 여·순 반란사건으로 공비소탕 도중 사병들이 어떤 부락을 공비부락으로 오인하고 
    몇몇 민가를 불에 태워버린 사실을 추후에 인지한 백장군은 사령부가 소유하고 있던 막대한 현금을 
    자신의 품에 지니고 도지사와 함께 현장으로 달려가서 '모든 잘못은 지휘관인 저에게 있으니 
    여러분은 사형죄를 범한 본인에게 직접 심판을 내려주십시오'하고 솔직 담대하게 
    사죄했을 뿐 아니라 소실된 가옥모두를 새로 지어 주었다. 
    이런 일화에서 보듯 백장군이 얼마나 지휘관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겸허한 일면이 있었던가를 엿 볼 수 있다.
    그 일이 자기반성의 계기가 되어 그때부터는 민간인에게 
    물 한 방울도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한사람 한사람의 병사들에게 주지시키는 것을 
    지휘정신으로 삼았으니 매우 놀라운 일이라 하겠다.
    또 한 번은 적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한강 이남  300Km나 후퇴하여 최후 방어선인 
    낙동강까지 이른 적이 있었다.
    이때 미 8군사령관 워커 중장은 최초방어선을 X선, 그리고 최후 저지선을 Y선으로 설정하고 있었다.
    Y선은 왜관을 축으로 남으로는 낙동강, 동으로는 포항에 이르는 선으로 대구와 부산을 포함하여 
    더 이상 물러 설 수 없는 마지막 배수진을 구획하는 선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백장군은 Y선 방어개념에 유리한 지형을 직접 찾아 나섰다.
    세밀한 지도가 없어 작전을 대한민국 전도에 의존하고 있던 형편에서 도상에서 
    산과 골짜기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가 없었다.
    지형을 정찰한 끝에 가산산성(架山山城)과 다부동(多富洞)이 방어선으로는 유리한 지형으로 판단, 
    참모들에게 '이번 방어선이 우리의 최후전투가 될지 모르겠다.
    우리가 이 선을 지키지 못하면 대구가 떨어지고 그렇게 되면 낙동강의 미군 방어선도 붕괴된다.     
    따라서 조국의 운명도 여기에 걸려있다.    이 선은 내가 정했다.     성패의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부디 성공하여 명예와 기쁨을 여러분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로 최후 방어선을 설명하고 훈시를 통해 
    '용장으로서의 책임과 방어선의 사수를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자'는 말로 이 전투의 격전을 예고하였다.       
    여러 매체를 통하여 다부동 전투의 격전을 알고는 있었으나 백장군의 생생한 서술을 통해 
    그때의 밀고 밀리는 전세와 치열한 백병전 속에서 최후의 저지선을 사수해야만 한다는 지휘관 이하 
    병사들의 굳은 각오를 읽을 수 있었다.     
    우리는 우수한 무기, 뛰어난 전술 등을 
    전쟁의 중요한 요소로 꼽지만 병사의 사기보다 우선순위로 보진 않는다.
    전장에서 '적을 제압할 수 있다'는 사기가 충천할 때 
    무기와 전술을 뛰어넘는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는 사례를 많은 전사를 통해 알고 있다.
    이 다부동 전투에서도 지휘관의 죽음을 무릅쓴 행동으로 적에게 빼앗기고 후퇴하는 병사를 되돌려 
    삽시간에 고지를 탈환하는 성과를 거두는 일이 많았다.
    미군의 좌측능선을 엄호하던 11연대가 기선을 제압 당해 고지를 탈취당하고 
    다부동 쪽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미 8군 사령부로부터 '한국군은 도대체 어떻게 된거냐.    
    싸울 의지가 있느냐'는 등의 힐책이 들려왔다.
    이 때 백선엽 장군은 다부동으로 급히 지프를 몰아 후퇴하여 산을 내려오는 병사들 앞에 나가 
    '모두 앉아 내 말을 들으라.    그동안 여러분 모두 잘 싸워주어 고맙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더 후퇴할 장소가 없다.    더 후퇴하면 곧 망국(亡國)이다.     
    우리가 더 갈 곳은 바다밖에 없다.     저 미군을 보라. 
    미군은 우리를 믿고 싸우는데 우리가 후퇴하다니 무슨 꼴이냐.    대한 남아로서 다시 싸우자.     
    내가 선두에 서서 돌격하겠다.     내가 후퇴하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 하는 말과 함께 
    부대 돌격명령을 내리고 선두에 서서 앞으로 나아가니 곧 병사들의 함성이 골짜기를 진동하고 
    지휘관들도 앞장서 부대를 지휘했다.  대대는 삽시간에 고지를 재탈환했다.
    힐책한 마이켈리스 대령은 백장군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사단장이 직접 돌격에 나서는 것을 보니 한국군은 신병(神兵)이다'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백장군이 병사들에게 우리가 이 나라를 구해야한다는 절박한 상황과 몸소 적전에 뛰어드는 지휘관의 모습을 
    보여줄 때 병사들은 이런 지휘관이 있음에 사기가 충천하고 '내가 해야한다'는 충성심이 불타올랐을 것이다.
    아마 그들은 그때 한 발짝도 내디딜 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구국의 일념으로 지친 몸을 다시 적전으로 뛰어들게 만든 것이다.
    한 명의 지휘관이 몸소 보인 군인정신의 표본으로 전세를 바꾸어 승리의 발판을 삼는 것을 볼 때 
    올바른 지휘관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전장에서의 사기가 군인의 최고 무기임을 실감하였다.      
    또한 이러한 백선엽 장군의 모습이 민주군대의 올바른 지휘정신으로 모든 군인들의 마음 속에 
    아로새겨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백장군은 이 글에서 연합작전에서는 상호 신뢰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상대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불안해서 싸울 수가 없다.
    일상생활에서도 서로 믿고 신뢰하기가 어려운데 생사를 건 전쟁터에서 
    서로를 믿는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미군도 상황이 좋을 때는 '오케이 오케이' 하지만 전황이 불리할 때는 냉혹해 진다고 했다.  
    국군이 자기 책임을 완수하여 신뢰를 얻고 그들로부터 '도와 줄 가치가 있는 전우'라는 신임을 얻지 못하면 
    연합작전은 성공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이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삶에 적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있을 때 나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상대방도 나를 신뢰하여 나를 위해 일해 줄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일그러트리기 쉬운 전장..., 비정상적인 전쟁터에서도 
    백장군은  언제나처럼 정상적인 형평성을 잃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전쟁터에서 인간으로서, 또한 군인으로서 더욱 성숙해졌고, 
    발전해 갔으며 대령에서부터 대장으로의 승진을 거듭했다.
    그러나 그의 소박한 인간성과 생활태도는 지위의 고하에 따라 또는 상대에 따라 
    차등을 두는 일이 없었으며, 그의 성실성과 노력은 시종 변화가 없었다.
    건국 초기에 있었던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은 대한민국 건국사의 중요한 일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그 같은 수난을 극복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내일을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군대와 전·후방에 살고있는 모든 국민들이 
    한국전쟁을 어떻게 극복해왔는가를 잘 알아야 함은 물론, 일선 지휘자로서 임무를 수행하는 
    현직 지휘관들이라면 선배장교의 생생한 전쟁체험을 통해 
    간접적이나마 지휘관의 자세를 본받아야 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과연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의 진상을 제대로 알고있는 국민, 
    아니 지식인이라고 말하는 우리의 대학생들 중에 과연 몇 사람이나 있을 것인가...?
    과거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올바른 미래도 보장될 수 없다.
    세대가 교체되어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우리들 곁에서부터 멀어진지 오래되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선열들이 공산침략을 막아내느라고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아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또 알려고 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지난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6.25의 진상을 모르는 많은 젊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또는 거리에서 
    관념적인 이데올로기에 도취되어 동족상잔의 원흉인 북한 공산집단을 예찬하고 있는 상황이 즐비했었다.
    20수년이 지난 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
    비록 80년대 초의 상황은 아닐지라도 요즈음 역시 안심하고 있을 상황은 아니지 싶다. 
    부산 아시안 게임 당시에 이제껏 우리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했던 북송선 만경봉호가 
    부산 다대포항에 버젓이, 그것도 온 시민의 환영을 받는 이해못할 상황을 연출하며 
    1개월이 넘는 장기간 동안 정박하는 아이러니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렇듯 요즘은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국시(國是)가 도대체 무엇인지 잊어버린지가 오래되었다.
    물론 반세기 동안 온 동포가 외쳐온 조국의 평화적 통일이란 과제가 시급한 것은 분명하나 뭐가 반공이고, 
    또 뭐가 멸공인지 조차도 이해하기 어렵다.
    하물며 온 세계가 알고있는 6.25 남침을 북침으로 떠들어대는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 속출하고 있기도 하다.
    이것은 6.25를 모르고 있다는 뒤집을 수 없는 명약관화한 증거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선엽 장군의 '군과 나'라는 전쟁 회고록은 일평생을 조국수호의 최전선에서 헌신해 온
    노병(老兵)이 조국과 국민에게 보내는 하나의 메시지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전쟁의 참혹함을 재삼 느낄 수 있었고, 
    조국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 할 때라는 것을 알게되었으며, 
    그간에 지휘관이 갖추어야할 모습에 대한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장교와 부사관, 병사들에 이르기까지 군인된 자라면.., 
    아니, 대한민국의 국민된 자라면 누구나 한 번 이 책을 읽고 대한민국 국민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조국에 대한 충성은 물론, 강한 자부심을 느껴보길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