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지대(不毛地帶)'을 읽고
「불모지대」는 일본의 중견 여류작가인 「야마자끼 도요꼬(山崎豊子) 여사」가 구소련의 하바로프스키로부터
모스크바 까지의 횡단취재, 중동 산유국(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쿠웨이트)등,
3차에 걸친 현장취재 여행, 대 재벌등 각계 인사 377명을 상대로 밀착취재한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5년여에 걸쳐 집필한 대하소설이다.
이 소설은 일본 육군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주인공 「이끼 다다시」가 태평양 전쟁 당시, 대본영 작전참모로서
북만주에서 소련군에 대한 결사 항전을 고집하는 관동군의 무장해제와 명령에 복종하라는
참모총장의 밀명을 받고 1945년 8월 16일, 만주 신경으로 떠난 후,
11년간의 시베리아 억 류생활에서 겪게되는 갖가지 고난을 엮은 제1부 시베리아에서의 “흰 불모지대”와
치열한 경제전쟁의 소용돌이속에서 상사간의 보이지 않는 싸움을 계속하다가 석유의 개발로 끝나는
2부의 “붉은 불모지대”로 그 줄거리가 엮어진다.
단 한 번의 귀국기회를 소년병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포기한 「이끼 다다시」의 시베리아 억류생활은
좌절과 실의가 반복되는 초인적인 인고의 세월이었으며, 그 고난을 극복하고 귀환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생과 사를 오가는 극한의 연속이었다.
나라를 위해 싸우는 후배를 위해 자신의 신변은 물론 가족들의 안위조차 생각하지 않은 채,
그 지옥과도 같은 시베리아 수용소와 여러곳의 유배지를 떠돌면서 겪는 갖은 고초들...,
부하들과 재회의 기쁨을 나누기도 전에 겪어야 하는 쓰라린 고통속에서도 자기보다는 부하를 생각하고,
부하들은 자신들보다는 상관을 먼저 생각하는...,
군대라고 하는 특수조직에서만 볼 수 있는 뜨거운 전우애를 꽃피워 간다.
마침내 모진 추위와 갖가지 질병을 극복한 주인공 「이끼 다다시」는
극적으로 유배생활을 끝내고 귀국하게 되지만 막상 귀국한 그에게는 또다시 많은 고통들이 산적해 있었다.
아내와 자식들은 생계유지에 급급해 하고 있었으며,
어머니로 부터 늘상 들어왔던 아버지의 모습을 실제로 확인한 순간, 너무도 동떨어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아버지를 멀리하려는 자식들의 모습을 대하고 가슴을 찢어내는 고통을 받는다.
「이끼 다다시」가 시베리아에서 11년에 걸친 시련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이,
일본은 패전의 상처를 말끔히 씻고 바야흐로 경제대국으로 변모해 가고 있었다.
전 세계에 걸친 치열한 상전, 지략과 술수가 날뛰는 각 상사간의 국제 경제전은
미국, 영국등 열강을 상대로 2차대전을 방불케하는 조직과 자금, 작전력의 대결이었다.
그런 와중에서 펼쳐지는 「이끼 다다시」의 제2의 인생..., 직장을 얻지 못해 부인의 생활비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부하들의 생계를 걱정하며 작은 마음이나마 도음을 주며 살아오던 중,
깅끼상사의 「다이몽 이찌조오」 사장에게 발탁되어 깅끼상사의 직원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되지만
군대사회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현실에 접하면서 많은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특유의 인내력과 끈기로 이를 잘 극복함으로써
오히려 다이몽 사장으로 부터 두터운 신뢰를 얻게 되었고,
마침내 깅끼상사의 주요간부에 전격적으로 발탁되어 국제 경제전쟁이란 새로운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동안 주변사람들로 부터 시기와 질투도 있었지만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마침내는 상사의 핵심요원이 되는데 성공하지만, 가장 친했던 동기생의 죽음을 접하는 불행을 겪는다.
친구의 죽음을 대한 「이끼 다다시」의 행동들에서 그의 훈훈한 인간미를 느끼게 된다.
「이끼 다다시」는 여기에서 지금까지 살아 온 자신의 가치관과 동료의 죽음으로 인해 경험하는 가치관의 혼란과
사회규범의 갈등속에서 현실의 냉혹함을 깨닫게 된다.
특히 상사(上司)들의 주관적인 생각과 자기위주의 사고방식은
「이끼 다다시」와 처음부터 끝까지 많은 견해차이와 숱한 갈등을 수반하게 된다.
그러한 갈등속에서도 전쟁 당시 모시고 있던 상관의 따님과 맺어지는 피치못할 관계에서 빚어지는
아내와의 갈등과 아내의 죽음, 여기에서 지난 11년 동안의 시베리아 억류생활 중,
그의 아내가 보여준 군인의 아내상을 엿볼 수 있다.
결국 기존의 가치관을 상실하지 않고 제반 난관을 극복하고 깅끼 상사의 제2인자로 부상하게 되는 과정은
우리 군인들 모두에게 또다른 교훈을 주기에 충분했다.
전형적인 군인의 길을 걸어온 주인공 「이끼 다다시」가 이질적인 세계에 뛰어들어 겪는 극심한 고통과
가치관의 혼란을 극복하는 과정들은 우리 장교들이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것이 아주 많다.
또한 활발하게 펼쳐지는 사회활동속에서도 그 이면에 흐르는 상사(上司)들의 모순적 행동과
일본인들의 경제의식 구조, 또한 그들의 생활관을 간접적으로 나마 체험함으로써
일본에 대한 또다른 견문을 넓힐 수가 있는 바, “패전국의 잿더미속에서 불과 30년만에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의 저력은 어디에 있는가?
또한 그들의 취약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를 가늠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비록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일본인이 저술한 책이고, 또 그 일본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쓰여지긴 했으나
우리들 모두에게 전달되는 교훈은 그 어떤 책보다도 더욱 실감있게 피부에 와 닿을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우리 군을 이끌어 갈 장교들에겐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친 폭넓은 지식과 경험이 요구되는 바,
이 불모지대는 국제화되어 가는 오늘을 살아가는 장교들에게 인식의 범위를 넓혀주고
삶에 자극을 주는 좋은 책으로써 그 역할을 다하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