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물든 파로호'을 읽고
우리민족은 지난 반만년의 세월을 지나오면서 100여회의 항쟁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많은 외침과 전쟁으로 얼룩진 수난의 역사속에서 고통 스럽게 살아 왔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집단의 남침으로 인해 빚어진 동족상잔의 처절한 전쟁을 치룬 이래,
53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 까지 북괴의 집요한 대남 무력위협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으나
국민의 70% 이상이 전쟁을 경험하지 못함으로써 대부분의 국민들이 전쟁의 비참함과 참혹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전후세대들의 경우에는 적의 위협으로 부터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절대적인 명제조차 잊어버리는
안보불감증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접하게 된 “피로 물든 파로호”는 나로 하여금 새로운 감회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전쟁의 울타리속에서 발생하는 우연에 의한 비극과 인간의 숨겨진 잔학성, 기계적이고도 획일적인 체제의 비 인간성,
그리고 이러한 체제에 지배된 북한 공산집단의 참혹성을 사실적으로 들추어낸 이 작품은
20세 꽃다운 나이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오금손 여사의 파란만장한 삶과 체험을 통해
전쟁의 처참한 실상과 그 전쟁의 참화로 인해 무감각적이고도 처참하게 짓밟힌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 노력한
오금손 여사에대한 강한 동료의식과 함께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대부분의 전후세대들에게
간접적이나마 북괴의 잔악성을 체험케 함으로써 국가 안보의지를 새롭게 하고,
국방에 대한 정신무장을 굳건히 다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총 265페이지 분량에 제1부 “광복군 처녀”, 제2부 “하늘과 땅이 통곡하던 시절”, 제3부 “그리도 행복은 멀어”,
제4부 “호국의 여인되어”등, 전편(全篇)에 드러난 전쟁의 참상은 물론이려니와
전쟁의 소용돌이속에서 고통받는 인간들의 기구한 운명과 함께
개인적인 불행의 연속선상에서 고뇌하는 한 女人의 애닯은 사연을 글의 골골마다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한국전쟁을 겪은지 어느덧 53년,
동족상잔의 처절했던 전쟁의 참화와 피흘려 조국을 지켰던 선열들의 위업들이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즈음하여 한국전쟁에 직접 참전한 군번없는 한 간호장교의 파란만장했던 삶과
희생적인 우국충정을 통해 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우리의 젊은 戰後世代들이
선배들의 고귀한 희생과 전투경험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고,
전쟁의 실상을 인식하며 참혹했던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전수받음으로써
전쟁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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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손 여사는 1990년 3월 20일, 독립운동가 오흥삼씨의 유복녀로 출생,
왕진손 장군의 미망인에 의해 양육되었으며,
독립운동가인 신숙 선생에 의해 자신의 출신성분이 밝혀지자 1944년 2월에 독립 운동가인 오세덕 선생의 권유로
부양에 위치한 독립군(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 독립군 활동을 시작한다.
해방을 맞아 귀국하던 중, 일행 모두가 고향과 가족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자
외톨이 신세가 되어 인천항을 방황하던 중 다행하게도 황해도 땅에서 아들을 잃고 돌아오던
양근섭이란 의사를 만나 양녀로 입적되어 짧으나마 서울의 병원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1947년 3월에 양부의 도움으로 개성시에 있는 간호전문학교에 입학하여 3년간 공부를 하면서
정자, 순애란 단짝 친구를 사귀고, 서툴었던 한글과 말을 깨우치게 된다.
‘50년 3월 학교를 졸업한 후, 개성의 성남병원 간호원으로 일하던 중, 전쟁의 발발과 함께
친구인 순애, 정자와 같이 현지 입대하여 백골부대 제 18 연대 간호장교로 한국전쟁에 참전한다.
개전 후 3개월이 지난 9월경, 전투에서 다친 부상자를 치료하던 김정자 소위가
인민군이 쏜 총탄에 처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인민군 6명을 사살,
그 공로로 대위로 특진하여 10월경에 18연대를 따라 동부전선에서 38선으로 진격,
원산, 함흥을 거쳐 함경북도 부령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에 밀려 부산으로 후퇴한 후,
제 18연대가 육군 제3사단으로 재편성, 중동부 전선 전투에 참여하였다.
1951년 여름, 대규모의 중공군과 인민군을 상대로 싸운 치열했던 화천지구 구만리(파로호)전투 육박전에서
포로가 되어 동료인 김순애가 처참하게 죽자 탈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혀 손톱과 발톱,
그리고 치아까지 모조리 뽑히는 고문을 당하는등, 죽음 일보직전까지 갔으나
중국어를 할 수 있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중공군 장교의 통역임무를 수행하던 중, 재 탈출을 시도했다.
탈출시 입은 하복부의 상처가 재발되어 1950년 김천 직지사에서 정신 요양을 하던 중,
오 여사는 너무나도 기구한 자신의 처지와 현실을 비관하여 스스로를 학대하다가 자살을 결심했으나
낙동강변 마을에 퍼진 장티프스로 주민들이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것을 보고,
주민들을 치료해 주다가 마음을 바꿔 다시 간호장교로 복귀를 한다.
간호장교 근무간 숱한 고통과 갈등을 겪은 끝에 ‘53년 육군소위와 결혼,
민간인으로서의 새로운 출발을 시도하지만
하복부의 상처를 본 남편의 부정적인 반응으로 인해 결국 결혼생활도 파탄에 이른다.
남편과의 별거생활을 청산하고 1960년 서울에서 무허가 빙수 장사와 화장품 장사, 포목장사,
뜨개질 수출업체 사장 등,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시작, 주변 사람들의 도움에 힘입어 얼마간 돈을 벌었으나
갑자기 나타난 남편의 사업자금 요구에 전 재산(집문서, 공장시설 문서)을 투자했으나
남편의 사업(광산업)이 실패하여 또다시 무일푼의 신세로 전락한다.
그러던중 시청 부녀과장의 추천으로 6개월간 사회사업 훈련원 교육을 수료하고
서울시 부녀 아동과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지만, 1964년도에 전상부위의 악화로 시청에 사표를 내고
자신이 전투에 참여했던 피의 격전지, 강원도 화천의 파로호에서 휴양생활을 시작한다.
1966년, 강원도 화천군 구만리에 정착하면서 정부시책으로 추진되던 새마을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주민생활과 마을의 주거환경을 대폭적으로 개선시켰으며, 간호장교의 경험을 살려 파로호 주변지역에
“지성호”란 배를 이용한 이동병원(移動病院)을 운영하여 주변환자들을 치료했다.
그러나 살아 갈 궁리는 하지않고 주거환경 개선이다, 치료다 하며 설치고 돌아 다니면서 입버릇 처럼
상이용사니, 광복군이니 하니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미친년이라고 욕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군인들과 친밀한 관계가 유지되자 화냥년이라느니, 음란하다느니, 바람둥이라느니,
이루 말할 수 없는 모욕적인 언사는 보통이고, 눈앞에서 손가락질하며 어처구니 없는 비방과
상스런 욕설로 빈정거리는등, 너무 지니치다 싶을 정도의 고통과 갈등을 겪는다.
이렇듯 많은 어려움과 시련이 뒤따르자 기독교 신앙에 몰두하게 되면서 더더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고,
1975년에는 화천군 5개 面에서 절미운동을 전개함과 동시에 탁아소의 설치와 관광객 유치를 위한 선착장을 건설하는등,
마을을 부유하게 만들고자 갖은 노력을 다하였다.
마을의 생활 및 주거환경이 좋아지자 1978년에 파로호에 독립 유공자를 위한 정양원을 설립한 이래,
수년간 군 부대 위문과 호국강연을 통한 부대와의 친목과 유대를 돈독하게 유지함으로써
심적인 위안과 함께 생활의 활력과 힘을 얻게 된다.
1985년도에는 국가 유공자 생활수기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강원도 경찰국 감사장,
도지사 대공운동 감사장, 창의력 개발 폐품활용 전시회 우수상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크고 작은 포상과 함께
강원도 반공 및 호국의식 계도 강사, 파로호 자연보호운동/자율 정화위원 위촉은 물론,
1989년 3월에는 상이용사 2급갑으로 전쟁기념 사업회 자문위원과 화천군 상이군경 분회장,
독립유공자 화천 정양원 관리소장으로 위촉되어 적극적인 호국강연으로 국가안보 이념무장에 기여했다.
그러던 중 무리한 강연으로 인한 과로와 연로함, 그리고 전상부위의 상처가 재발되어
2년 동안 원호병원에 입원하였다가 퇴원한 후, 독립 유공자 정양원 운영에 전력을 다하다가
1990년 6월 회갑과 함께 26년간 살아왔던 파로호를 떠나 대전으로 거주지를 이동한 후,
지금까지 군과 예비군, 그리고 학생과 각급기관을 대상으로 5,000여회에 이르는 강연을 실시하는등,
봉사적이고 희생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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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주인공의 행적을 따라 이책의 개략적인 줄거리를 요약하였다.
본문중에서 오 여사는 이글의 내용이 자신을 자랑하거나 미화시키려는 것이 아님을
수차례 밝히면서도 자칫 오해의 소지를 우려하는 마음에지극히 겸손한 마음을 글의 곳곳에 남겨 놓았는 바,
“위악 이외인화 악중 유유선로, 위선 이급인화 선중 시악근(爲惡 而畏人和 惡中 猶有善路, 爲善 而急人和 善中 是惡根)”,
즉 “악한 일을 행한 다음 남이 아는 것을 두려워 함은 아직 악 가운데 선을 행하려는 길이 있음이요,
선을 행하고 나서 남이 빨리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그 선속에 악의 뿌리가 있는 까닭이다”는
채근담의 경구를 인용한 것을 볼 때, 오금손 여사의 솔직한 심정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또한 오 여사의 호국강연 중에 “믿음에는 배신할 수 없는 힘이 있다.
설혹 전과자라고 할지라도, 또는 초면의 사람이나 손해를 입혀 준 사람일지라도
상대방을 믿어주면 내가 믿어 준 만큼은 반드시 보답한다.
이익을 위한 믿음에는 가끔 배신의 쓴 맛이 따르지만 인간적으로 신뢰해 주면 상대방도 자신을 믿어 준다.
내가 먼저 믿어주지 않으면 상대방도 나를 믿어 주지 않는다”고 하여
믿음에 대한 상당한 무게와 남을 위해 헌신봉사하려는 그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한 인간이 겪은 전쟁의 처참했던 상황과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던 처절한 절규,
그리고 여인으로서 밝히기 어려운 내용에 이르기 까지 진실되게 기록한 오금손 여사의 체험을 접하고서
나름대로 가슴찡한 감동과 함께 쓰라린 아픔을 동시에 느꼈다.
책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때론 가슴이 저려오기도 했고,
치를 떨게하거나 두주먹을 불끈쥐게 하는 분노를 느끼기도 했으며,
때론 가슴 뿌듯한 사랑 이야기로 메마른 정서에 불을 지피는 등,
새롭게 태어나고 싶은 충동과 뜨거운 욕망이 꿈틀거리기도 했다.
비록 작자의 주관적인 사실이 기록되긴 했지만 거짓을 진실로 기록했다거나
없었던 일을 있었던 일로 만들어 낸것은 절대 아닐 것이기에,
또한 기록되어진 내용의 50%만 사실로 인정한다고 해도 현대인들에게 있어 지워지지 않는
체험적 교훈으로 오래오래 기억되어 질 것이다.
광복군 생활에서 부터 6.25전쟁에 참전하기까지 주인공이 겪는 시련은 힘없던 시절에
우리 민족이 겪었던 아픔으로 느껴졌고, 6.25 전쟁중에 북괴가 저지른 진정 인간으로서는
행하지 못할 야수와 같은 행위-처녀인 간호장교의 젖가슴을 150명의 포로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칼로 도려내어 죽이던 잔혹함,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가죽을 벗기는 참혹함,
양민을 몽둥이로 때려 죽이고 칼로 찔러죽여 산더미 처럼 쌓아 두던 일,
산채로 양민들을 땅에 묻어 얼굴만 나오게 하여 죽이는 일-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면서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전후 세대의 한 사람이지만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할 수가 없었다.
또한 전쟁 종식 후, 주인공의 삶을 통해 조국을 재건하려는 우리 민족의 노력과 한민족 특유의 은근과 끈기,
그리고 꿋꿋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고, 주인공의 억척스런 삶의 모습에서 폐허를 재건하여
오늘날의 발전된 조국을 있게한 선조들의 고통과 노력을 읽을 수 있었으며,
이는 곧, 사치풍조와 금권 만능주의, 그리고 향락풍조에 만연된 오늘날의 우리 세태에 비추어
부끄러운 마음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끔 한다.
또한 전쟁의 참상은 차치하고서라도 주인공 오금손 여사 개인에게 가해지는 숱한 학대와 고통들,
특히 여군이라고해서 결사적으로 결혼을 반대하는 군의관의 부모님들,
중국인에 의해 양육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푸대접하는 시대상황과 보수적 의식성향,
그리고 행복해야할 결혼(신혼)생활이 전쟁에서 입은 하복부의 상처로 인해
오히려 결혼을 하지 않은 것보다도 더 불행해지는 등, 인생의 전반이 결정되어 버리는 현상들에서
글의 결말을 앞서나가 새삼 현실에의 강한 否定을 예감하기도 한다.
아무튼 오금손 여사의 체험과 생활자세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너무나 많다.
여사의 살신성인하는 삶의 자세와 조국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 너와 나를 구별하지 않고
봉사하는 진솔한 이웃사랑, 밟으면 밟을수록 더욱 강해지는 잡초와도 같은 끈질긴 생명력,
그리고 무엇이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판단하고 결심만 서면 즉각 행동으로 실천하는
적극적인 추진력과 강인한 정신력들은 우리에게 있어 절실한 것들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요즘에와서 사회적인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대부분의 것 들, 즉 윤리도덕이 무너져 내리고,
집단 이기주의(NIMBY : Not In My Back Yard) 사상의 팽배와 각종 패륜범죄의 빈발 등은
이러한 정신적 사고의식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또한 오금손 여사의 지적처럼 우리나라 국민의식속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언어에 대한 문제는 우리모두가 다시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
흔히들 쉽게 내뱉거나 흘려 버리는 욕설과 무심한 말들..., “나쁜 자식”, “망할 자식”은 보통이고,
“주리를 틀놈, 때려 죽일 놈, 망할 놈, 오살맞아 뒈질 놈, 육시랄 놈, 지랄 염병할 놈, 빌어먹을 놈,
우라질 놈” 등..., 전쟁의 쓰라린 참화나 처절한 전장의 흔적보다도
오히려 우리의 국민의식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구태의연한 사고와 이기주의적 잔재들에 대한
의식개혁의 우선적인 변화가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특히 우리 군인들은 155마일 휴전선을 경계로 하여 북괴와 직접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안보현실을 직시하여,
두번다시 한반도에 전쟁의 참화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투철한 안보의식으로 무장하여 세계속에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전력투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