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넋 / 청송 권규학
높은 산, 깊은 계곡
먼 길을 휘둘러 돌아
눈부신 나신(裸身)을 흔들어대는
갈대의 가랑이 사이를 빠져나와
하구언(下口堰) 모래톱에 이르러
백사장이 질펀하도록 사랑을 나누는
강물과 바다가 만나는 자리
얼마나 갈구했던 소망이었던가
쌓인 정열을 불태우노라니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드는지도
뽀얀 거품이 쏟아지는지도 모른 채
서로 부둥켜 안고
허겁지겁 몸을 섞는 너는
성난 바다와 지친 강(江)
한순간 회오리치다만 돌개바람이었을 뿐
그리 격렬한 정사(情事)도 아니었다
성급히 나눈 불장난이었을지라도
그곳에서 잉태된 건 바람이었고
바람의 옷깃을 잡은 물결이었고
바람과 물결이 만들어낸 성난 파도였다
세월의 넋이었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15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