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가을 들판에 서서 / 청송 권규학
가을은 빨리 떠나려는 쪽과
떠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쪽
두 팀이 팽팽히 맞서는 계절이다
지난여름
그 지겨웠던 더위가 아직도 생생한데
옆구리를 밀치며 들어서는 산산한 바람
이 바람의 뒷자리엔 무엇이 있을까
추위일까, 이르게 찾아드는 따뜻함일까
찾아드는 게 떠남을 위한 것이라면
떠남이란 건 다시 오기 위한 준비일 터
오면서 떠나고 떠나면서 다시 오는
가을이란 계절은 참으로 애처롭다
외롭다, 쓸쓸하다
왠지 휑한 눈망울에서
뚝뚝-
눈물이 떨어져 내릴 것만 같다
가을 들판에 서는 날이면
바람은 또 어김없이 달려와 앉는다
바람의 옆자리에 서서
너르게 펼쳐진 들판을 바라본다
아무리 너르다 해도
네 것, 내 것으로 조각조각 찢어내는 인간 삶
저 너른 들판의 주인은 누구일까
어찌 보면, 땅은 늘 그렇게 슬픈 존재다
하늘은 어떤가
하늘의 태양과 달과 별들
반짝이는 미리내 강의 은빛 모래알
그들의 주인은 또 누구일까
사람들이 아무리 교활하다 하지만
아직은 많이도 순수한 게 분명하다
하늘의 태양과 달, 그 숱한 별들
'내 것이다', 금을 긋지 않은 걸 보면.(1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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