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 당신(2) / 청송 권규학
접시꽃*이 피는 계절입니다.
비 내리는 골목 안, 대문 앞에서 후줄근히 비를 맞는 접시꽃을 보면 당신이 생각납니다.
대단하게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다른 꽃들보다 진한 향기를 풍기는 것도 아니지만,
언제, 어느 때든 대문 앞을 지키는 수수한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는가 봅니다.
어쩌면,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이란 詩가 중추신경을 점령해서인지도 모릅니다.
옥수숫대에 떨어지는 굵은 빗소리를 들으며, 야위어진 아내의 손을 꼭 쥔 채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접시꽃 당신'이란 이 詩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지요.
길고도 짧은 인생, 그 짧고도 긴 삶의 여정에서 진정 누군가를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요?
미처 챙겨주지 못한 세월의 둔덕에서 힘없이 미소 짓는 당신의 얼굴을 바라볼 날은 또 얼마일까요?
말로는 '사랑', '사랑', '사랑한다'는 말, 수없이 했지만, 정녕 영원히 한 사람을 사랑할 수는 있을까요?
스스로 답변을 찾지 못하면서도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어린 왕자'의 꿈을 키우는 건 아닌지요?
영원히 함께 하겠다던 약속도, 슬픔에 겨워 아파했던 마음까지도 접어버린 '접시꽃 당신'의 시인조차도
본연의 자세를 잃어버리고 세파에 휩쓸려 떠다니는 모습을 보면 아파져 오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사랑은 소유가 아닌 존재라고 하지만 존재감을 아무리 외쳐도 영원한 존재란 건 없는데 어찌하나요?
화왕(花王)*의 어화원* 부름에 응하지 않고 끝까지 꽃감관*을 기다린 것처럼
장맛비가 거침없이 쏟아지는 오늘 같은 밤에도 어김없이 골목길의 대문을 지켜줄까요?
'접시꽃 당신'이란 詩를 쓴 그 시인도 여전히 아내 생각을 하며 슬픔에 젖어 있을까요?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새벽녘, 지금도 누군가를 떠올립니다.
함께 하지 못한…. 함께 하지 못할 사랑이지만 접시꽃과 같은 사랑을 꿈꾸고 싶은 그런….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기쁨이고, 사랑이고 행복일지도 모릅니다.
영원히 함께하지 못할지라도, 사랑하고 있는 지금이 영원이요, 행복입니다.
그래요, 그렇습니다.
당신은 영원한 나의 접시꽃, '접시꽃 당신'입니다.
오늘 밤도 고운 꿈길 지나 새로운 아침이 오면 '접시꽃'의 해맑은 미소를 볼 수 있기를.(120716)
* 접시꽃(Alcea rosea)
: 아욱과에 속하는 중국 원산의 관상화/약용식물로써 꽃은 촉규화(蜀葵花), 뿌리는 촉규근(蜀葵根),
줄기와 잎을 촉규묘(蜀葵苗), 종자를 촉규자(蜀葵子)로 부른다.
또한 촉계화. 설기화. 마간화. 과목화. 대근화. 기단화. 단오금. 촉규근. 덕두화 등 여러 이름이 있음.
6~8월에 개화하여 10월에 결실을 맺는 두 해 살이풀로 다양한 약용효과를 가지고 있음.
* 화왕(花王) : '꽃 나라의 왕'. '어화원(御花園)'을 지어 세상의 모든 꽃을 불러들였다는 전설 속 인물.
* 어화원(御花園) : 화왕(花王)이 꽃을 재배하고자 만든 전설 속의 화원(花園)
* 꽃감관 : 옥황상제의 명을 받고 서천 서역국에서 세상의 모든 꽃을 모아 가꾸는 전설 속의 관리(官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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